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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Mar 27. 2023

#16. 그러게, 누가 캠핑 데려가래?

엄마라는 것이 힘든 날

엄마! 내 꼬리빗 어디 있어?!!! (몰라. 네가 챙겼잖아)

내 가방 어디 있냐고!! (문에 걸어놨어)

몰라, 가방 어디 있냐고!!! (문에 걸어놨어, 여기 있잖아)

어제 숙제 못한 거 다 엄마 탓이야. (갑자기, 뭐라고?)

엄마 때문에 캠핑 다녀오고 머리가 아팠고, 그래서 숙제를 못했잖아! (....... 忍, 忍, 忍)

그런데 나한테만 뭐라고 하고! 작작해! (더 이상 못 참겠다! 내가 숙제 안 했다고 뭐라고 했니? 그리고 말버릇이 그게 뭐야? 누가 어른한테 작작하란 소리를 해? 아침부터 왜 그러는 건데?)

엄마는 맨날 남 탓만 해. 또 내 탓만 하잖아!! (하아.. ) 

이게 다 엄마가 캠핑 데려갔기 때문이야! 


논리도 전후 설명도 그 어느 것도 효과 없는, 아이의 불이 꺼져야 끝나는 폭풍 같은 아침이 지나갔다. 오늘은 꽤 데미지가 크다. 스트레스 상황을 못 견디는 아이는 불같이 다 쏟아내야 진정이 되고, 나는 대화가 안 되는 상황이란 걸 알아버린 후로 입을 닫는다. 이런 일이 한 바탕 훑고 지나가면, 태풍이 쓸고 지나간 곳처럼 내 마음은 만신창이가 된다.


매번 불편한 상황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을 볼 때면, 잘 못 키운 후회와 자괴감에 괴롭다. 반면에, 그저 사랑만 주려고 했는데 내가 뭘 잘못했어? 다 타고난 기질이야. 못된 걸 닮았구나. 하는 억울한 마음도 살짝 고개를 든다. 참 닮았다. 그와의 인연은 죽을 듯한 아픔을 이겨내고 끊어냈지만, 천륜으로 이어진 자식은 어떻게든 밝고 긍정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사랑을 듬뿍 주고 키우면 다 잘 클 줄 알았다. 그래서 정말 노력했었다. 





지난달, 유리에 찔린 발 수술 후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여 회복을 확인할 겸 근처 낮은 산에 갔다가 발목을 접질렀다. 인대 파열이라니.. 곧 등산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만 같다. 그러나 일주일 간 열심히 주사 맞고 깁스를 하니 발목이 꽤 부드러워졌고, 역마살이 살살 피어오른다. 등산을 못 가니 캠핑이라도 가자며 아이와 반려견 밍밍이까지 대동하여 길을 나섰다. 물론, 아이는 꽤 적극적으로 캠핑에 동의했었다.


그동안 밍밍이를 데려가지 않은 것은 차멀미를 하여 토할까 신경이 쓰이고, 사람을 너무 좋아하여 창 밖에 사람들만 보이면 낑낑대니 차분히 운전을 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 차에 적응을 좀 했고, 두고 가서 맘에 걸리느니 힘들어도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산책만 나가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감을 뿜어내는 최강 E 밍밍이와의 캠핑은 역시 쉽지 않았다. 넓은 야외에 있으니 밍밍이의 흥분은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묶어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묶어 놔도 문제인 게 난로 주위에 끈이 감기면 난로가 넘어져 불이 날까 무서웠고, 음식을 차려놓은 테이블 밑으로 들어가 테이블을 뒤집게 생겼으며, 간섭이 없는 곳에 묶어 놓으니 이제 혼자 빙빙 돌다 끈이 짧아져 낑낑댄다. 세팅하랴 밍밍이 챙기랴, 아이 밥 챙기랴 정신이 쏙 빠진다. 그 와중에 엄마! 핫스팟! 엄마! 충전기!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도 서글픈데, 잠깐 다른 걸 하러 간 사이 내 음식에 입을 대는 밍밍이를 살짝 밀어냈다가 아이는 동물 학대범이라며 악을 쓰고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때린 것 아니라 밀쳐낸 것이라고, 말로 하기엔 이미 입이 닿게 생겨서 밀어낸 것이다, 파리가 오면 손짓해 쫓아내듯이..라고 설명해 봤자 건수 하나 잡은 듯이 따발총 같은 아이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같이 싸우거나 혼내면 밑바닥만 보게 되는 걸 알기에 난 또 참아 본다. 

"그만해. 너 지금 엄마한테 말 너무 함부로 하고 있어. 엄마도 화가 날 것 같으니 그만해"


 



대면대면, 피곤한 저녁이 그렇게 지났다.

힘든데도 캠핑을 하는 건 물론 내가 좋아해서도 있지만, 아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욕심도 부리면 안 되는 건가... 그래도 엄마로서, 보호자로서 최선을 다해 아이와 밍밍이를 케어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답답하다 낑낑대는 밍밍이와 다시 밍밍이를 데려오라는 아이가 번갈아 깨우는 덕분에 잠도 편하게 잘 수 없었다. 아이가 어릴 땐 새벽에 깨는 게 일상이었는데 이제 나이가 들었는지 한 번씩 깨면 너무 힘이 든다. 특히 장거리 운전에 세팅 노동으로 몸도 욱신욱신한데 말이다. 


그래도, 캠핑장의 아침은 늘 좋다. 밍밍이와 아이 아침을 차려주고 부지런히 정리해서 집으로 출발했다. 날이 좋아져서 그런지 차가 많이 막혔으나 아이는 헤드셋을 끼고 있고, 밍밍이는 잠을 자니 그래도 조용하게 올 수 있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버린 캠핑..

집에 오니 모든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다.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아이에게 숙제하라고 한 뒤 정리하고 오니, 숙제 첫 장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 어려워서 못했다고 한다. 그럼 어려운 거는 엄마가 알려주겠다며 설명했으나 머리가 아파서 못하겠다 한다. 그래, 건조한 차 안에서 자서 감기가 왔을 수도 있고, 너도 피곤할 테니 오늘 숙제는 하지 말라며 약 먹이고 두피 마사지까지 해서 잘 재웠다. 마사지받는 동안 행복한 아기 같은 표정의 13살 딸.. 나한테 사납게 하는 게 아이의 전부는 아닐 거야. 이런 모습도 아직 남아 있어. 힘든 하루였지만 편안한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아이도 엄마의 손길을 느끼며 잠이 들었으니 해피엔딩이야..


 



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로 아침을 차려주며 가볍게 한 마디 했다.

"오늘 학원선생님께 어제 아파서 숙제 못했다고 말씀드릴게. 못한 건 다녀와서 해~"


그 한 마디는 오늘의 불 쏘시개가 되었고, 아침에 그 사달이 났다.

아이에겐 저 말이 큰 부담스러운 잔소리였고, 집착이었다. 그리고 아침에 하는 모든 짜증스러운 일들에 원인은 내가 되었으며, 난 또 감정의 하수구가 되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올바른 한 사람으로 키워낸다는 것은 정말 인내심과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

평소, 부족한 부분은 어떻게든 공부해서 채워나가야 한다는 게 나의 신조인데 육아에 있어서는 자신감이 떨어진다.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가 저런 걸 거야. 난 아니라고 하지만, 나한테 배운 말투와 행동일 수도 있어. 난 좋은 엄마가 아닐 수 있어. 아이와 잘 놀러 다니는 겉모습은 허상일 수도 있어.


이해하기 힘든 아이의 행동에, 엄마로서 아이를 잡아줄 수 없음에, 단단한 한 마디의 영향도 없음에 오늘 아침은 꽤 힘이 든다. 그래도, 사랑하고 아이를 늘 믿고 있다 믿음을 주고, 부딪혀도 아이가 동의하면 같이 시간 보내는 걸 조금 더 해보려 한다. 사실, 다른 방법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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