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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n 30. 2023

홍콩에서 보내는 편지

마음의 몸살을 앓고 있는 딸에게…

사랑하는 딸,


우리가 떨어져 있는 3일 중 첫날이야. 출장 간다고 거짓말해서 미안해. 엄마는 원래 거짓말 안 하는데 말이지. 이 편지는 어쩌면 네가 평생 못 볼 수도, 또는 많이 커서 볼 테니 솔직하게 쓸게.


어젯밤 정말 사랑스러운 얼굴로 이제 학교 갈 거라며 배시시 웃고 안기던 네 모습이 떠올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어. 이곳에 온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겠지만, 너를 구하기 위해서 엄마가 튼튼해야 하는데 부끄럽게도 최근 엄마는 너무 약해졌었어.


아침마다 학교 가는 것까지 보고 갈 수 없는 현실에 불안했지만 너를 믿고 밥벌이의 일터로 나갔어. 그러나 학교에 가지 않고 버틴다는 할머니의 연락과 왜 오지 않냐는 담임 선생님의 문자는 여지없이 반복되었어. 나는 엄마이기에 당연히 내 책임이지만, 당장 달려가 너를 학교에 데려갈 수 없음에 애가 탔어. 전날 밤에 긍정적이던 너는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봐야 한다는 불안에 휩싸여 모든 의지를 잃어버린 다른 아이가 된 것 같았어.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힘든데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연락에 엄마는 너무 힘들었어. 나도 당장 집으로 달려가 너를 설득시켜 학교에 데려가고 싶으나 당장 일을 멈출 수 없는 현실이 괴로웠어. 때로는 어른들의 노력에도 변화 없는 네가 밉기도 했어. 이런 시간이 한 달이 넘어가니 엄마는 숨쉬기도 힘든 상태였어.


사실 네가 제일 힘들 거야. 그런데 엄마는 너를 지켜내야 하는 사람이라 이 상태를 이겨내야 했어. 현실을 직시하고 너를 불안의 늪에서 꺼낼 방법을 찾아야 했어. 그러나 그러기엔 엄마가 해야 할 일과 받는 자극이 너무 많아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었어.


그래서 엄마는 잠시 쉬기로 했어. 네가 마음이 편한 주말을 이용해 잠시 떨어져서 바라보려고 이곳에 왔어. 홍콩 여행을 다시 하고 싶단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지. 낯선 곳에서 길을 잃지 않게 다른 감각을 깨우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서 마음껏 너를 그리워하고 싶었어. 그래서 이렇게 3일을 네 곁을 떠나게 된 거야.


그런데 웃긴 건, 공항에 가는 그 길에서 ‘네가 참 공항 가는 걸 좋아했는데.. 같이 가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야. 엄마는 어쩔 수 없는 우리 딸의 팬인가 봐. 이륙 준비 중인 비행기 안에서 또 학교에 가지 않고 버틴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사실 마음이 무너졌어. 그러나 비행이 끝난 후 휴대폰을 켰을 때 학교에 잘 갔다는 소식을 기대하고 휴대폰을 껐어. 결국 안 갔단 소식에 잠시 화가 났지만, 오기가 생겼어. 꼭 너를 구하겠다고 말이야. 약속을 지키지 않은 너에게 화가 나도 되는 상황을 엄마는 기회로 만들기로 했어.


“너도 네 맘대로 잘 안 돼서 힘들지? 엄마랑 선생님이랑 도와주려고 해도 네 불안을 없애긴 쉽지 않은 것 같아. 우리 전문 선생님께 상담받고 치료하자. 엄마도 요즘 마음이 답답해서 죽을 것 같지만, 약국 가서 ‘마음이 답답한데 약 좀 주세요’라고 할 수 없거든. 그런 약은 약국에 없으니까. 우린 마음의 감기에 걸린 거고, 마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공부를 많이 한 의사 선생님께 도움을 받자.”


엄마의 진심이 통한 걸까? 드디어 병원에 가는 것에 동의한 네 모습을 보고 안도함과 동시에 얼마나 간절했을까 싶어 마음이 많이 아팠어. 이제 우리 마음의 감기도 치료하고 다시 시작해 보자.


엄마는 오늘 호텔에 도착해 잠만 잤어. 그리고 홍콩의 야경을 보러 갔지. 그 순간도 온통 네 생각뿐이었어. 여기 꼭 같이 와야겠다. 너에게 더 많은 세상을 많이 보여줘야겠다. 그리고, 네가 살면서 겪을 많은 아픔들을 나중에 겪으라고 너를 온실 속에 가둔 엄마를 반성했어. 이제 너와 세상을 보러 다니며, 짐도 들게 하고 복잡하고 좀 지저분해도 현지 느낌 물씬 나는 곳을 찾아다닐 거야. 아직 늦지 않았을 거야. 엄마가 강하니까, 강한 모습 보여주면 너도 강해질 줄 알고 보호만 한 것 같아. 네가 살면서 받을 자극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너를 도와줄게. 우리 다시 해보자.


차분하게 생각이 정리되고 있어. 도망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지만 잘 온 것 같아. 하지만, 집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어. 주말이 빨리 지나가 다시 네 옆으로 가고 싶어.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거야. 그러나 엄마가 너를 포기하면 지금 일은 돌이킬 수 없이 너를 망가뜨릴 거야. 그래서 엄마는 힘을 낼 거야. 꼭 너를 구할 거야. 그러니 너도 엄마를 믿어주면 좋겠어. 영원히 변하지 않을 네 편인 엄마를…


딸, 오늘은 렌즈도 못 닦아주고 마사지도 못해주지만.. 그래도 편안히 잘 자길 바래.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꿈이 찾아오길 바래..


사랑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2023. 06

홍콩에서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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