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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l 23. 2023

점점 더 악화되는 상황

등교 거부 54일~63일, 바뀌어버린 밤낮

밤낮이 바뀌어버렸던 아이는 이젠 종일 깨어있다 잠깐씩 졸며 하루를 버티는 패턴으로 바뀌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푹 자는 것 같아 기다리다 더 늦기 전에 뭐라도 먹여야 할 것 같아 깨우니 원래 깨어 있었다며 안 챙겨놓고 뭘 먹으라 하는 거냐며 대화를 거부한다. 내 진심을 전달하고 싶은데, 방문은 굳게 잠겨 있다.




2023.07.03 - 07.07 (54-58)

고맙게도 체험학습이란 제도가 있어 가정학습 명목으로 2주의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등교를 포기한 건 아니다. 앞으로도 등교 거부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에 보험으로 신청했던 거다. 아직 월, 금요일은 재택근무라 그날은 내가 등교를 봐줄 수 있다. 아이는 최근에 그랬던 것처럼 최대한 시간을 벌며 세월아 네월아 준비를 했고, 나는 아침 미팅과 업무 중간중간 아이를 챙기고 비위를 맞춰주며 결국 현관 밖까지 내보내는 것에 성공했다. 드디어 학교를 가는 것인가. 아이가 골목을 돌면, 들어가 업무에 집중해야지 하던 찰나 갑자기 펑펑 울기 시작한다. 자신이 너무 싫다고, 전학시켜 달라고 서럽게 운다. 하아... 전학을 원할 정도로 정말 문제가 심각했던 걸까? 학폭이나 왕따는 아닌데 다른 문제가 있는 걸까? 너무 울기에 집에 다시 들여보냈지만, 마음 한편에는 며칠 무단결석으로 더 가기 힘들어진 학교에 가기 싫어 핑계를 대는 걸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다음 날, 오후에 간신히 가서 선생님만 만나고 온 걸 빼고 이후 결석은 이어졌다. 초기 등교 거부 원인이 무엇이었던가 희미해질 정도로, 밤낮이 바뀌어서 학교에 갈 수 없는 컨디션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평소 일찍 재우려 하면 민감해져서, 적당히 합의한 게 11시였다. 11시가 되면 씻고 잠옷을 갈아입으면 내가 마사지해 주고 딥슬립에 들어가는 게 루틴이었다. 그러나, 내가 자러 가면 다시 일어나 새벽에 자는 것 같았고, 그 뒤로 밤낮이 바뀌어버렸다. 산 넘어 산이다.


2023.07.08 - 07.10 (59-61)

아직은 아이가 눈치를 좀 보는 것 같다. 오늘은 11시에 자자고 하니 별일 없이 씻는다. 등교는 못해도 생활리듬은 바뀌면 안 되지! 어떻게든 잠자리에 드는 걸 봐야겠다는 의지의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최대한 아이 기분을 맞춰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드림렌즈를 끼기 위해 거울을 보자 갑자기 자기 얼굴이 싫다며 울고 짜증을 낸다. 난 또 입을 닫게 된다. 반응 없는 엄마에 뿔이 난 아이는 결국, '왜 나를 낳았어! 왜 결혼 같은 걸 해서 나를 낳았냐고!'라는 험한 말로 나를 문밖에 나가게 한다. 그날 문을 닫고 나오며 내가 아이 예상 안에 있는 행동을 했구나 깨달았다. 현명한 엄마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나는 아직 부족하여, 잠 못 자고 직장 다니며 힘들었지만 부족함 없이 키우려 애쓴, 두통약으로 버티던 30대의 내가 떠올라 슬퍼져 더 이상 그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때까진 외모로 인한 불만은 나를 내보내려는 핑계라고만 생각했었다.


주말에 아이와 오랜만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갔다. 책을 산 뒤 초밥을 먹고 청계천 가서 물장구까지 치는 게 어릴 때부터 익숙한 우리만의 코스다. 그렇게 기분도 풀고, 종로로 넘어가 익선동에서 예쁜 아이템도 하나 사고,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걸으며 에너지를 좀 채우고 일찍 자는 거다. 일부러 차도 가져가지 않고 버스를 타고 출발했고, 만화책 3권과 인스타템이라는 빈티지선풍기까지 구매한 것까지는 좋았다. 익선동을 가기 위해 송해길에 들어서자, 어르신들의 길담배에 아이는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익선동 입구도 못 가본 채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아이는 휴대폰에 비친 얼굴을 보고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었으며, 도착해서 먹기 위해 딱 맞추어 배달된 냉면도 먹지 않고 방으로 올라가 문을 잠가버렸다.


졸업 앨범 촬영에 마스크를 벗기 싫다며 버티던 아이는 이제 작은 휴대폰 화면에 비친 얼굴도 혐오스러워질 정도로 외모 불만이 심해져 버렸다. 아이의 진짜 문제는 친구와의 갈등인가, 외모 불만인가... 이들의 기저에 있는 낮은 자존감인 건가. 엄마로서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여 아이를 끌어올려야 하는데, 나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진짜 아픈 게 아닐까?라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한다.


2023.07.11 - 07.12 (62-63)

아이의 밤낮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아이를 재우려면 새벽까지 옥신각신해야 하지만, 출근하려면 아침 7시 전에 집을 나서야 하기에 도저히 내 체력이 따라주질 않았다. 방학도 며칠 안 남았으니 등교에 힘쓰지 말고, 천천히 아이 생활 습관을 잡는데 집중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다만, 아이 등교는 나만 포기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계속해서 오는 학교에서의 연락에 또 조급해진다. 그러나 등교가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외모 불만이 급격히 심각해져 갔기 때문이다.


살찐다고 밥도 거의 안 먹고, 거울 보면 속이 안 좋다고 거울도 다 돌려놓는다. 심지어 작은 거울들은 이미 휴지통에 버려졌다. 최근 등교 거부 원인 중 하나가 머리 스타일이었기에, 미용실을 예약해 두었지만 못생겨서 나갈 수 없다 버텨 예약금만 날렸다. 밤낮이 바뀐 것에서 얼마나 더 안 좋아질 수 있을까 했는데, 바닥은 아직 멀었다는 듯이 아이 상태는 더 안 좋아졌다. 안 그래도 마른 아이가 먹지도 않고 씻지도 않고 컴컴한 방에 누워 휴대폰만 보고 있다. 내가 아무리 다정하게 말을 걸어도, 어떠한 동요도 없다. 응급 상황이다.




다른 사람이나 본인을 해치는 정도까지 돼야 응급 상황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영혼이 없는 것처럼 모로 누워 어떤 반응도 없는 아이를 보자 내 노력만으로는 아이를 구하기 힘들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가장 좋은 건 아이가 스스로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오늘도 아이는 자기는 이미 일어났었는데 바로 챙기지 않았단 이유로 문을 잠그고 대화를 거부한다. 방문은 잠겨 있고, 인기척은 없는데... 나도 억울하다.


차갑게 식은 음식은 다시 냉장고에 넣어야겠다. 내일은 조금 다른 하루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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