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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l 21. 2023

이때 알았어야 했는데, 네 마음을..

등교 거부 13일~51일, 무단결석 시작

아이가 곤히 자고 있는 오늘은 주말일까?

아.. 금요일이구나.





2023.05.23 - 29 (13-19일째)

아이를 괴롭게 하던 졸업 앨범 촬영이 끝난 줄 알았건만, 컨셉 촬영이라는 복병이 숨어 있었다. 라떼는 증명사진과 단체 사진으로도 충분했는데, 연예인 프로필도 아니고 컨셉 촬영이라니… 사실 아이는 생선가게 컨셉이라며 앞치마와 물고기 슬리퍼를 준비했었다. 그러나, 막상 그날이 되자 아이는 물고기 슬리퍼를 꺼내지 못했다.


선생님께 듣기로는, 계속 달래고 이유를 물어봐도 울기만 했다고 한다. 삼삼오오 모인 다른 아이들이 맞춰 입은 의상에 소외감을 느낀 것 같다고 하시며 위클래스 상담을 권유하셨다. 점점 심해지는 외모 불만이 마침 걱정되던 차라 흔쾌히 상담신청을 하기로 했다.


2023.05.30 - 06.20 (20-41일째)

졸업 앨범 사건이 지나고, 3일의 연휴를 보내면서 아이는 다시 밝아진 것처럼 보였다. 들쭉날쭉한 사춘기 감정 상태는 여전하지만, 잘 놀고 친구들과 게임하는 소리도 들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한 주가 시작되자 아이가 학교에 들어오지 않고 계단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다음 날은 안 간다고 버텨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집에 와서 물어보니 여자 아이들이 자기를 없는 사람 취급해서 가기 싫다 한다. 이건 무슨 소리지?


2주 전, 가장 친한 친구가 가족 여행으로 일주일간 자리를 비웠었다. 아이는 그 친구로 연결되어 있던 무리에서 소외당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다음 날, 그다음 날도 아이는 느지막이 등교하여 급식실, 연구실 등에서 시간을 보냈다. 친구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도와주고자 선생님께선 과자 파티를 열어 보드게임도 하며 다른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도 마련해 주셨으나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8시 20분이면 뛰어 나가던 아이가 샤워를 한 시간 이상을 하거나 욕실 물기, 날파리, 나가다가 부딪힌 할머니 팔 등 여러 이유를 대며 최대한 버티다 간신히 등교를 했다. 이렇게 총 3주를 보냈다.


그 과정에서 선생님과 많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아이들과는 여전히 서먹하며 쉬는 시간에 혼자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하신다. 이때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어야 했는데 늘 있을 수 있는 친구들과의 갈등이라 생각했고 금세 지나가리라 가볍게 여겼다. 아이가 좋아하는 밤 드라이브를 하면서 나의 경험을 얘기해 주며,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만도 했었다.


제일 후회되는 지점이다. 예민한 감각을 지닌 아이는 상처를 쉽게 받는다. 그런 아이가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으면서, 끼리끼리 맞춰 입은 친구들 사이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나는 아이의 아픔을 들여다볼 생각을 못했고 여러 핑계를 대며 지각을 하는 아이가 버겁기만 했다. 지각을 해도 등교는 할 때, 서둘러 병원 예약이라도 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자책만 하게 된다.


2023.06.21 - 06.29 (42-50일째)

본격적인 결석이 시작되었다. 처음엔 일어나기 힘들어 결석을 했고, 그다음 날은 반 아이들 절반 이상이 자기를 싫어해서 가기 싫다고 버텨 결국 보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니 선생님께서 학부모 상담을 요청하셔서, 학교에 가게 되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학교에 들어서자 아이 입학식이 생각난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에 지금은 거들떠도 안 보는 분홍색의 외투를 입은 아이 모습이 생생하다. 첫인상이 우스워보이면 안된다는 선배 엄마들 조언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장하고 큰 귀걸이까지 하고 갔던 내 모습도 떠오른다. 나는 졸업식에 갈 수 있을까?


처음 뵌 선생님은 밝고 친절한 분이셨고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하시는 게 느껴졌다. 아이의 학교 생활, 집에서의 생활 등을 서로 나누며 일반적인 상담을 이어가다, 선생님께서는 조심스레 아이 병원 진료를 권유하셨다. 아이는 감각이 예민하며, 그런 아이들은 자극과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불안도가 높아질 수 있으니 약물치료를 하면 많이 나아질 것 같다고 하신다. 약물치료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놀라기도 했지만, 많은 아이들이 치료를 받고 있고 호전된다고 하니 희망도 생기고, 아이가 거부할까 걱정도 되고 복잡할 뿐이다. 주변을 둘러 아이 책상을 보니 집에서 보낸 빗자루 세트와 에코백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저 자리는 우리 아이 자리인데, 저 자리는 왜 비어 있어야 하는가.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아이는 여전히 학교 갈 생각 없이 버티고 있으며, 엄마는 계속해서 카톡으로 SOS를 보내신다. 아이와 엄마와 번갈아 연락하다 보면 회사에 도착한 것도 모를 정도다. 9시가 넘어가면 선생님께서도 계속 연락을 하신다.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고 버티는 아이를 나라고 보낼 수 있을까. 처음엔 다정하게 설득해 보지만, 내 목소리도 어느덧 높아지고 아이는 전화를 끊어 버린다. 오롯이 아이를 도와주시려는 선생님의 계속되는 연락도 이제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정일이 이렇다고 일을 대충 할 수도 없고, 나에겐 또 챙겨야 하는 팀원들도 있다. 다 나만 보는데,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는 무력감에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며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아빠가 눈앞에서 쓰러지셨을 때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담담하게 내 자리를 지켰고, 혼자 있을 때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었다. 그래도 호흡이 가빠지거나 하는 증상 같은 건 없었다. 그런 내가, 버티기 힘들었나 보다.


슬픔, 답답함, 무기력함, 분노 … 도저히 이성적인 판단이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3일 후 홍콩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가서 실컷 울고 실컷 생각하고 좀 비우고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다.


2023. 06.30 (51일째)

무단결석이 3일 연속되면, 매뉴얼 상 가정 방문이 원칙이라 하신다. 회사에 있어 선생님을 만나진 못했지만, 교무부장님과 오셔서 아이와 한참 이야기 하고 가셨다고 한다. 집에 오니 아이가 활짝 웃으며 ‘엄마 나 내일 학교 갈 거야. 학교 안 가면 정부에 백만 원 벌금 낸대! 아까운 돈을 낼 수 없지!’라며 으쓱 거린다. 이런, 선생님들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효과는 있다. 나도 보태어 ‘그래! 엄마 세금도 많이 내는데 그 돈을 낼 수 없지!’하며 오랜만에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이렇게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건가?

홍콩여행은 괜히 가는 건가?

(그러나, 다음 날도 아이는 갈 수 없었다.)




아이의 본격적인 등교 거부 시작은 ‘친구와의 갈등’이었다. 그러고 나서 알게 되었다. 십 대 여자아이들의 무리 문화와 그 안에서의 갈등이 꽤 심각하다는 것을… 무리는 구름처럼 뭉쳤다 흩어지며, 그 안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이 생기고 그 아이들은 견디기 힘든 아픔을 겪게 되고, 이는 학교를 거부하게 되는 주원인이었다. 수권의 사춘기 육아서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그전엔 몰랐던 세상, 이제 나에게 열린 그곳에 대해 더 알아야 한다. 미리 알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래서 아이가 친구들에게 소외감을 느끼고 친구들이 무시한다고 했을 때, 조금 더 사려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후회로 가득할 뿐이다.


더 힘든 것은 한 달이 지난 지금, 아이는 더 이상 친구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추락한 자존감은 외모 강박과 대인기피증이라는 암덩이를 만들어냈다. 책상에 책은 없어도 거울은 꼭 올려두던 딸은, 이제 모든 거울을 버리거나 깨고 깜깜한 방에서 게임만 한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이제 화가 나는 게 아닌 아이가 안타까워 슬플 뿐이다. 응급상황이지만, 손을 내밀 곳이 없는 것도 너무 힘들다. 며칠 후 예약한 병원에 진료라도 볼 수 있게 되기를, 아이가 방에서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방에서 안 나오겠다고 버티면 어떻게 해야 하지? 우리나라는 어린아이가 아니고서는 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어 119가 와도 아이가 싫다 하면 병원에 데려갈 수 없다고 한다. 1388에도 전화해 보았지만, 종일 통화중인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시간이 아까워질 정도였다.


아픈 아이를 살리기 위해, 더 힘을 내야 하는데…

나는 아직 길고 긴 어두운 터널 안에서 헤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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