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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l 16. 2023

마스크 벗기가 두려운 아이

등교 거부 1일~12일, 전조 증상

2023.05.11 (1일째)

여느 날과 다름없는 목요일 출근길..

아이가 아직도 등교하지 않고 있다고 엄마께 연락이 온다. 무슨 일이지? 한 동안 이런 일 없었는데…

다행히 담임 선생님께 9시 5분쯤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일단 안심하고 잊었다.


이 후로도 지각이 잦긴 했지만, 평소와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제시간에 나가던 아이가 갑자기 행동이 달라졌을 때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다는 것을 이제야 후회한다.




2023.5.17 - 22 (8-12일째)

일하고 있는데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온다. 졸업앨범을 찍어야 하는데 아이가 완강히 거부한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자 바로 떠오르던 것이 있었다.


2주 전, 아이와 오사카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있던 일이다. 공항 보안 검색대에서 마스크를 내리는 순간 아이는 돌변했다. 그곳에선 고집이 통하지 않는 걸 알아서인지 순순히 내리긴 했으나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표출하지 못한 짜증을 나한테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여러 번 외모 불만으로 인한 짜증과 분노 폭발로 오랜만에 아이와 둘만의 해외여행이 참을 인자로 도배되었는데 보안검색대에서 대미를 장식했다. 결국 바나나빵 같은 건 사지도 못하고 트레인을 타고 게이트로 이동했었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스크는 바이러스에서 지켜주는 역할을 넘어 콤플렉스를 가려주기까지 하는 가장 의지되는 친구가 되었다.  쌍꺼풀진 큰 눈, 작은 얼굴, 풍성한 머리카락 등 아이는 예쁘다. 고슴도치 엄마라 예쁜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도 예쁜 얼굴이다. 다만, 코가 날렵한 모양은 아니라 세련된 인상을 갖고 싶다면 성인이 돼서 약간의 튜닝이 필요한 정도? 하지만, 이 정도면 10대를 기쁘게 보낼 수 있는 훌륭한 외모란 말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코에 대한 불만으로 마스크가 없인 절대 외출하지 않으며 심지어 외식을 할 때도 코스크로 변형하여 코를 가리고 밥을 먹는다. 그런 아이에게 친구들 앞에서 마스크를 내리고 사진을 찍는 게 큰 부담으로 다가옴을 충분히 인정한다.


여기서 잠깐! 아이에게 네가 얼마나 예쁜지, 나중에 수술을 해주겠다느니 하는 말은 안 먹힌다. 그 순간 크게 싸우지 않고 넘어가는 게 가장 현명한 것 같다는 게 수 없이 부딪혀 보며 깨달은 팁이다.


저녁에 아이와 대화를 하며, 졸업 사진 찍는 게 부담되면 마스크를 쓰고 찍어도 되고 그것도 힘들면 안 찍어도 된다고 얘기해 주었다. 그러나, 아이 마음 한편에는 친구들과 사진 찍고 싶은 마음과 졸업 앨범에 빠지는 게 싫은 것이 느껴졌기에 대화가 시원하게 끝나진 않았다.


졸업 앨범은 왜 며칠 씩 찍는 건지.. 앨범을 찍는 기간 동안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

앨범에 대한 부담은 지각으로 이어지고, 선생님께서 아이를 설득하시다 결국 모든 사진을 안 찍는 걸로 졸업앨범 일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생일이던 18일, 아이는 처음으로 결석을 했다. 딱히 어디가 아픈 것 같지는 않은데 출근하여 전화로 설득하기엔 무리라 그냥 쉬라 전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선생님께선 상담을 넌지시 제안하셨고, 별 이유 없이 결석한 것에 당시는 아이도 살짝 눈치를 보고 있었기에 그 틈을 타 상담 동의를 얻어냈다.


이때까진, 졸업앨범 촬영 시즌만 끝나면 아이가 다시 돌아올 줄 알았다. 거의 매 주말 만나 스티커 사진도 찍고, 마라탕 먹고 집에 와 시끌벅적하게 노는 친구들이 있으니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등교 거부로 이어지는 사건이 있었고, 나는 길고 긴 등교 거부의 터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설익은 10대의 외모 불만, 그것도 참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다. 어른이면 그래 해라해! 하고 병원이라도 데려가겠지만, 아직 성장기인 아이에게 수술을 시켜 줄 수도 없다. 그리고 아직 미성숙한 뇌의 아이에게 외모보다 내면이 중요하고.. 어쩌고 하는 옳은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 그런 조언은 아이와의 사이에 벽돌을 하나하나 쌓는 것과 다름없다. 코로나 끝나고 3년 만에 떠난 가족여행에서, 괌의 따뜻한 바람에 흩어지는 앞머리에 얼굴이 드러난다며 온갖 짜증을 내어 여행을 서먹하게 만들고, 그 안에서만큼은 신나는 일만 있을 것 같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도 왜 못생기게 낳아놨냐며 길에서 세 시간을 시위하며 그 아까운 시간을 날려 보냈다. 이젠 하도 들어 왜 이렇게 낳아놨냐, 왜 결혼을 해서 나를 낳았냐 하는 말들은 상처도 안 된다. 얼른 아이가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기만을 바라고,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 여러 방법을 찾아보고 또 찾아본다.


사춘기 관련 책을 닥치는 대로 사서 읽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서도 딱히 이렇다 할 해답을 찾진 못했다. 오히려 우리 애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외모 콤플렉스로 힘들어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때 TV나 잡지에서나 볼 수 있던 예쁜 사람들을, 이젠 SNS에서 너무나 많이 볼 수 있다. 게다가 그들은 연예인도 아니다. 일반인인데 너무 예쁜 거다. 그게 아이들의 외모에 대한 기준이 되어 버렸고, 그러기에 자라나며 재배치? 되는 이목구비는 맘에 안 들뿐이다. 김치를 예를 들면, 생김치는 신선하고 아삭아삭하여 맛있지만 그때는 잠깐 뿐, 맛있게 익은 김치가 되려면 잠깐의 맛없는 시기를 지나야 한다. ‘엄마 이거 맛 왜 이래?’하고 물으면, 엄마는 ‘응. 김치가 미쳐서 그래. 곧 익을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아이들은 딱 그 미친 시기인 것 같다. 그래서 뭔가 어설프다. 하지만, 아이들은 미완성 그 자체로 너무나 깨끗하고 순수하고 예쁘다. 그 뽀얀 피부를 진한 화장으로 가리고, 아직은 이른데 부모를 졸라 쌍꺼풀 수술이라도 하기 위해 수술대에 눕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코수술도 가능했다면, 나도 수술 결심을 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부모도 견디기 힘들다.)


외모 불만은 현재의 등교 거부와 함께 가장 큰 난제이다. 지금은 등교 거부 중 ‘집안에 처박히기’ 단계인데 아이를 잠깐씩이라도 밖에 데리고 나오려면 거울을 보고 단장을 해야 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외모 불만이 다시 고개를 든다. 오늘도 엘리멘탈을 보기 위해 준비하다 제멋대로인 앞머리에 거울 앞에서 좌절하다 무산되었다.


끝도 없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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