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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치 Jul 16. 2023

맵다 매워, 등교 거부

별 일 아닌 줄 알았어

담임 선생님과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를 쭉쭉 올려 과거로 돌아가 보니 등교 거부 시작은 5월 11일, 벌써 67일 전이다(오늘은 2023.07.16). 처음엔 마스크를 벗고 졸업 사진을 찍기 싫은 사춘기 아이의 투정이라고만 생각했고, 늘 있을 수 있는 친구들과의 가벼운 다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제 인싸가 되었다며 밝던 아이가 낮밤이 바뀐 채 방에서 끄집어 내려하면 으르렁 거리는 맹수가 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초6 딸아이의 등교 거부는 아직 진행 중이다. 그동안 혼내도 보고, 달래도 보고, 우르륵 올라오는 화를 꾹 눌러내며 아이의 속마음을 들어보려고도 해 봤다. 그러나 어떤 노력에도 아이의 상태는 더욱 안 좋아졌고, 나의 정신과 몸 상태 또한 어떻게 버티는지 싶게 약해져 갔다.


끝도 없고, 길도 없는 막막한 터널 안에서 유일한 빛 한 줄기가 느껴질 때면 희망을 가져 보지만, 꿈쩍 않는 아이의 모습에 그 빛은 사라지고 만다. 나도 나름 평탄한 삶을 살아오진 않았고, 직장생활을 20년 이상하며 쌓인 사회 경험으로 웬만한 문제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 번은 다르다. 이 놈은 꽤 매운맛이다. 아이를 도와주려는 담임 선생님을 비롯한 학교 상담선생님과의 소통과 협력, 책들로 간신히 버텨가며 정신을 붙잡고 있다. 그러나 정신만 붙잡기엔 문제가 꽤 심각하다. 당장 결석으로 인한 학습 공백이 문제가 아니다. 점점 세상과 담을 쌓고 자기만의 안전한 공간인 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를 구해내야 한다.


이제 장기전을 준비해야 한다. 내 몸과 정신부터 챙겨야 한다. 두 달간 아이가 가장 힘들었겠지만, 부모가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수 권의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아이가 움직이지 않으면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엄마가 용을 쓰고 아이랑 대치해 봤자 남는 건 깨져버린 아이와의 관계일 뿐이다. 아이가 언제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기다리자'이다. 생각해 보니 지난 두 달간 나는 지옥에서 살았고, 반년만에 만나는 친구들의 모임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 시간에 나는 홍콩 호텔방에서 아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울고 있었다. 사람도 안 만나고 혓바늘과 입병은 늘 달고 있으며, 이혼 후 많이 개운해진 심한 편두통도 다시 도졌다. 그럼에도 상황은 악화될 뿐, 달라지지 않았다. 이러다 내가 죽겠다. 내가 살아야 아이를 도와주던, 둘이 물고 뜯던 할 것 아닌가. 


다시 일어서기로 했다. 우선 침착하게 마음 정리도 할 겸, 아이의 등교 거부 시작부터 끝까지 기록하기로 했다. 방학 끝난 후 아무 일 없듯 정상 등교하는 스토리가 매거진의 마지막 이야기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이 지난한 과정에서 느꼈던 나의 감정의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위안과 도움이 되면 좋겠다. 


겪어 보지 않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식의 등교 거부. 이 시간에도 많은 분들이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마다, 집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부모의 찢어지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다들 본인 건강부터 잘 챙기며, 이 시기 잘 이겨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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