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담 (1)
태엽을 감았다 놓는다. 금속 원통이 회전하면서 원통에 고정된 여러 개의 바늘이 음계판을 툭툭 건드린다. 머리빗처럼 가지런히 배열된 음계판이 짧게 떨리며 금속성의 맑은 소리를 낸다. 원통이 일정한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시간의 흐름이 생기고 각각의 음이 연결된다. 얼핏 무작위로 흩어진 듯 보이던 바늘의 간격은 정확히 계산된 시간의 길이로 치환된다. 음정과 박자 두 가지 요소가 직조되면서 음악의 형태를 이룬다. 음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이처럼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게 또 있을까.
오르골의 음색은 잡기도 전에 금방 꺼져버리는 불빛 같다. 울림도 짧고 소리의 배음도 적은 탓이다. 피아노같이 근사한 소리가 아니라 장난감같이 앳된 소리가 난다. 금세 사라져 버리기 때문에 더 애틋해지는 수줍고 맑은 소리다.
음색만큼이나 중요한 오르골의 매력은 역시 보는 즐거움이다. 간단한 기어 장치에 맞물린 금속 원통이 천천히 돌면서 오묘한 빛을 반사한다. 퉁겨지는 금속판은 살아있는 듯 툭툭 오르내린다. 이해하기 쉽고 조화롭다. 작동하는 오르골을 보고 있자면 하나의 완성된 세상을 보는 듯하다.
이렇게 오르골이란 물건에 대해 바지런히 생각해 보는 것은 문득 어린 시절의 연애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너를 태우고, 오르골’이라고 검색해서 음악을 듣는다. 시간은 순식간에 과거로 돌아간다.
그맘때 나의 연애는 어리고 순진했다. 다들 그렇듯 열렬한 연애가 갑자기 끝나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연애를 시작하기도 하는 건데, 그때는 그게 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뭘 더 잘할 수 있었는지 같은 생각이 온종일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얼마 후면 그 아이의 생일이었다. 아직 헤어진 (구) 애인을 떠나보내지 못했던 나는 무언가 기억에 남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청승이지만 누구나 그런 시기가 있는 법이니 조금은 너그러워져 보기로 하자. 아무튼 나는 그 아이가 내 선물을 보면서 나와의 추억을 소중하게 곱씹길 바랐다. 고민 끝에 결정한 선물이 바로 오르골이었다. 소리도 모양도 예쁜, 듣다 보면 금세 마음이 아련해지는 작고 소중한 기계 장치. 정말 이상적인 선물 같았다.
이제는 노래를 고를 차례였다. 오르골은 악기라기보다는 이미 정해진 단 한 곡만을 연주하는 재생장치다. 따라서 어떤 멜로디가 담긴 오르골을 선물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나는 ‘캐논 연주곡’같이 흔해 빠진 곡은 선물하고 싶지 않았다. 몇 가지 후보 중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너를 태우고’라는 곡이었다. 지브리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테마곡이다. 멜로디도 그렇거니와 곡의 제목도 정말 마음에 들었다. 무려 ‘너를 태우고’라니! 기어이 내 여린 감성을 흔들고야 말았다.
그렇게 어렵게 구한 오르골인데, 손에 올려놓고 보니 내가 뭣하고 있나 싶었다. 오르골의 태엽을 감아보았다. 음악이 흐르자 마음이 달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회상에 젖어들기에는 좀 짧은 시간이었다. 음악이 끝나자 주위가 조용해졌다. 나는 몇 번이고 태엽을 다시 감았지만 음악은 번번이 멈추었다. 이미 끝난 노래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나는 태엽을 자꾸만 감고 있었다.
정작 오르골을 선물한 순간이나 고맙다는 말을 들은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국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오르골은 내가 갖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연애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요즘 보고 있는 청춘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같이 예쁘고 소중한 순간의 모음집이면 좋겠지만 이게 그렇지가 않다. 돌이켜보면 창피하고 비루한 기억이 많다. 설령 기회가 닿는다 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어리석음과 자기 연민의 용광로에 제 발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는 거 아닌가.
하지만 오늘은 태엽을 감는 날이다. 유튜브에서는 오르골로 연주된 ‘너를 태우고’가 아직 나오고 있다. 반복 재생을 눌러놓으니 음악이 멈출까 봐 염려할 필요가 없다. 아이고 이렇게 편리할 수가. 금속 바늘이 스칠 때마다 생기는 짧은 떨림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다는 걸 안다. 음악을 들으며 미성숙했던 과거의 연애사를 되짚어본다. 나는 뭘 해도 처음부터 잘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지금의 내가 타인과 관계 맺는 일에 조금이라도 성숙한 부분이 있다면 그건 과거 내 애인들에게 진 빚이다. 경험하면서 배우고 반성하고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 이제 와서 그들에게 멋진 오르골을 선물할 건 아니지만, 멜로디처럼 흩어지는 울림일지라도 작게 소리 내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22.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