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보며
미셸 공드리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좋아하시나요? 이 영화의 원제는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입니다. 한국어로 하면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빛'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얼어붙은 찰스강에 드러누운 두 사람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클레멘타인의 발치에 있는 실금은 두 사람의 불안함과 애틋함을 함께 말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이별한 아픔을 잊고자 추억을 제거하는 시술을 받습니다. 시술을 마친 조엘은 우연히 클레멘타인을 만나고 처음 만난 사람처럼 인사를 건네지만, 어쩐지 그리운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조금 비과학적으로 이야기해도 된다면, 머릿속 기억은 사라졌지만 조엘의 심장에는 여전히 사랑이 남았습니다.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애초에 추억을 제거하는 시술부터가 S.F. 이기 때문에 동화적 허용으로 넘기도록 합니다. 애초에 동화라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도 믿음이 그 시작이잖아요.
<어린 왕자>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려면 먼저 믿어야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사랑, 동화, 우정, 인류애, 윤리 등)을 믿고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규범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실체가 없는 것을 대상으로 하기에 불안정한 일입니다. 특히 물질주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에게는 더욱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아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믿는' 일은 낯설어합니다.
하지만 불안정과 어려움이 믿음 그 자체를 빛나게 합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믿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언가를 믿는다는 행위에는 애틋한 소망이 깃듭니다. 믿음은 우리가 단순히 피와 살로 이루어진 존재 이상이 되기 위해서라면 꼭 필요한 무언가입니다. '티 없는 마음'이나 '영원한 빛'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우린 때때로 그것이 있다고 믿거나 믿고 싶어 합니다. 실로 간직할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마음입니다.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빛, 소리 내 말하는 것만으로도 뭉클해지는 것 같습니다. 가끔은 저도 믿는 마음을 품어볼까 싶습니다. 가끔은 믿는 마음 그 자체가 종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