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네 반찬'이라는 요리 예능 프로에서 연기자 김수미 씨는 멋진 요리 실력을 지녔지만, 다른 출연자들이 그녀의 설명대로 따라 하기는 쉽지 않다. 그녀의 설명은 '먹기 좋은 크기', 고춧가루 '조금', 마늘 '적당히' 등, 수치화 계량화 되지 않은 표현들이라서 그렇다. 중간에서 장동민 씨가 '대파는 5cm 크기로 자르세요.', '고춧가루는 2스푼 넣으세요', '마늘은 작은 스푼으로 하나만 넣으세요'등, 당황하는 출연자들을 위한 번역 과정이 웃음 포인트이다.
아들이 대여섯 살 때쯤 '가와사키'라는 특이한 이름의 병에 걸려 큰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검사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간호사에게 물었다.
"조금 걸려요."
조금이라는 시간은 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인 걸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대략 30분 정도면 될까요?".
"그때그때 달라요."
"ㅠ.ㅠ"
2019년에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탔던 헝가리 유람선이 전복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뉴스에서 전복된 배를 인양하는 기술자와의 인터뷰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는 "배 바닥에 70cm 정도 흙이 쌓여 있었습니다."라며 배의 상태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흙의 높이를 그는 실제로 재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실제로 흙은 60cm나 80cm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배 '바닥에 흙이 많이 쌓여 있었다'라고 하면 5cm도 많을 수 있고 1M도 많을 수 있기에 배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웠을 게다.
서양에서 과학혁명이 이루어지기 전에 수량화 혁명이 먼저 있었다. 그전까지 말로써 '해가 중천에 떴다'거나, '무게가 무겁다'라고 표현하던 방식에서 항해사들은 '해가 수평면 90도 높이에 있다'거나, '포탄의 무게는 8Kg'라고 숫자를 써서 표현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 발달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과학이나 기술 분야에서는 특히나 정확한 수치나 계량화가 중요하다. 첨단 기술을 개발 중인 우리 회사에서는 모든 보고서나 발표 자료, 구두 보고 시에도 수치로 파악해서 보고하도록 교육한다. 아예 부사를 쓰지 말라고도 한다. 이미지 결과들도 전에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비교하여 A보다 B가 나은 결과라고 얘기했지만, 이미지도 프로세싱을 거쳐 이미지 안의 중요한 내용을 수치화하여 비교하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회사 생활을 오래 한 나도 여전히 모든 것을 수치화로 표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습관이 들 때까지 의도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이렇게 수치화 계량화를 하면 뭐가 좋을까?
우선은 커뮤니케이션이 명확해진다. 앞서 예를 든 김수미 씨의 요리 방식은 우리 어머니 세대분들이 일반적으로 하시던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는 예능 프로에서 봤듯이 듣는 사람은 정확한 양을 가늠할 수 없어 당황스러울 뿐이다. 적당하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많다, 적다, 크다, 작다, 조금, 꽤 등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하다 보면 실수가 발생할 여지가 많아진다.
또 하나의 장점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수치화나 계량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 세대로의 기술 전수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솜씨 좋은 시어머니에게 요리를 배우는 며느리는 항상 어머니 곁을 지키며 각 요리마다 어머니의 '적당히'와 '약간'을 파악해야만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치화와 계량화를 거치면 선배들의 기술이 후배들에게 훨씬 수월하게 전수될 수 있다.
회사에서 배운 대로, 아들이 유치원생일 때부터 '크다', '작다' 같은 표현을 쓸 때는 항상 기준을 세워서 얘기하도록 가르쳤다. 손가락 마디든, 손바닥이든, 키든 기준을 정한 후 그에 비해서 큰지 작은 지를 표현하라고 했다. 응용력이 좋은 아들은 어느 날, "엄마, 내 에너지가 지금 보통 때의 10%밖에 안 남았어. 그러니까 엄마가 나한테 밥을 좀 줘야겠어."라고 말했다.
이렇게 귀엽게 말하던 아들은 어디 갔는지, 지금 내 곁에는 뺀질뺀질하고 능글맞은 아들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