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릴 때였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인 내 직장 근처로 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살고 있던 집을 세 놓고, 회사 근처에 새로운 집을 구해야 했으며, 아이 유치원도 새로 알아봐야 했다. 그 와중에 남편은 3주간 출장 중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개발 중인 프로젝트 중 하나의 리더가 되어 매주 임원들에게 진행사항을 보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발표를 앞둔 전날이었다.
"이렇게 해서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했습니다."
임원들 앞에서 멋지게 발표하고 싶었지만, 결과는 영 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발표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잠을 자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어떻게든 잠을 청하려던 순간,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었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깜짝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처음 느낀 증상이었다. 여러 가지 집안일들로 머리가 눌리고, 다음날 발표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와중에 스트레스가 내 몸에 이상 증세를 만들고 있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이래저래 스트레스가 많다. 내게 가장 심한 스트레스는 주로 발표 중에 상사의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을 때 발생한다. 대답을 못한 것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한데 그에 이어 상사가 소리라도 높여서 호통을 치게 되면 마음에 심한 상처를 입게 된다. 한동안은 기분이 나쁠 뿐 곧 회복이 가능했다.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언제부턴가 그런 일이 발생하면 그날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낮에 있었던 상황이 몇 번이고 머릿속에서 반복되며, 그때 내가 왜 이렇게 대답하지 못했을까? 그 순간에는 이렇게 대처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가정을 해가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나 자신을 원망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낮에 그런 일이 발생할 당시에는 별로 심각한 문제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나는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대뇌에서 활동하는 나의 사고 뇌는 나를 달랜다. 그러나, 밤이 되면 자율 신경계의 내 생존 뇌는 다르게 반응한다. 상처 입은 생존 뇌는 내 잠을 방해하고, 내 심장 박동을 어지럽히고, 편두통을 일으키기도 한다. 내 사고 뇌는 나를 상사에게 혼나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금방 툴툴 털어버리는 대범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싶지만, 말을 못 하는 생존 뇌는 다양한 증상으로 내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의 생존 뇌는 내 사고 뇌보다 연약하다. 그리고 사고 뇌로는 생존 뇌를 달랠 수 없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이 사랑을 멈추자고 다짐해도, 쉽게 그만두기 어려운 짝사랑처럼, 우리의 사고 뇌와 생존 뇌는 작동 메커니즘이 달라 서로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일들을 겪으며 내가 스트레스 내성(stress tolerance)이 약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내 생존 뇌를 안심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려고 했다. 학술적인 근거는 없지만 경험에 의해 스트레스 내성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태어나는 스트레스 내성은 다르지만, 각자의 스트레스 내성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까지는 말이다.
내가 찾아낸 생존 뇌를 달래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아래와 같다.
포옹을 하는 것이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를 부모가 오랫동안 안고 있으면 아기의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다른 사람의 체온을 느끼며 심장 소리를 들으면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효과가 클 것이다. 신혼초에는 남편 품에 꼭 안겨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 수준이 많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애석하게도 이 방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효가 떨어져서 지금은 거의 쓰지 않고 있다.
또 한 가지는 걷기다. 경험적으로 걷는 것은 확실히 스트레스 감소에 효과적이다. 나는 걸을 때 음악도 듣지 않는다.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옮겨 다니며 편안하게 걷는다. 심심함을 최대한 즐기는 것이고, 이런 시간이 나의 생존 뇌에는 긍정적인 시간 이리라 생각한다. 익숙해지면 한 시간 이상을 걸어도 지겹다는 느낌이 없다. 걷기 전엔 머릿속이 꽉 차 있다고 느끼다가도 걷고 나면 머릿속이 많이 비워진 느낌을 받는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해서 수다를 떨기도 한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었던 얘기를 하면 친구는 무조건 내 편을 들어준다. 스트레스 해소 측면에선 동성의 친구가 남편보다 훨씬 좋은 상대다. 남편은 실컷 듣다가, '당신이 잘못했네'. 이런 말도 겁 없이 내뱉기도 하니 말이다.
또 다른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친구에게도 얘기하기 애매하던 일들, 더 디테일한 내용들을 글로 적는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게 아니므로 두서없어도 상관없다. 그냥 그 당시의 느낌,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 누군가에 대한 분노 등을 그대로 토해 낸다. 글쓰기는 일종의 정신적인 배설 행위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매일 몸안의 나쁜 찌꺼기들을 몸 밖으로 내보내는 의식을 갖는다. 우리 뇌에 쌓인 나쁜 찌꺼기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의식이 있다면 그건 글쓰기라고 믿는다.
몇 달 전에 회사의 명상 프로그램에 입과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강사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따라 했다. 3일째가 되자 명상이 나를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어렴풋한 느낌이 왔다. 내가 다른 사람을 보듯이 나를 보고 있는 느낌, 나를 벗어나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관찰하는 듯한 느낌. 잠시 동안이지만 나를 벗어나 내가 갖고 있는 고민이나 염려들과도 분리되는 듯 했다. 이런 장점들 때문인지 세계 유명 회사들에서도 적극적으로 직원들에게 명상을 권장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