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일이 재미있으려면

by 카푸치노

입사 후에 내가 처음 맡게 된 일은 반도체 개발 라인에 공급되는 수질을 분석하는 설비를 들여오고 분석법을 setup 하는 일이었다. 반도체에서 사용하는 물은 불순물이 있으면 불량으로 연결되기에, 물속의 미량의 이온 불순물, 유기물, 미생물 들을 분석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고를 띄워야 한다. 화학과를 나온 나는 각 분석기들의 분석 원리를 배우고, 필요한 설비들을 사서 setup 하고 분석법을 정해서 결과들을 확인했다. 내가 책임자였고, 나를 도와주는 몇 명의 helper들이 있었다. 해외에서 들여온 정밀한 분석 설비들도 있어서 미국이나 일본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렇게 처음 setup을 하는 약 2년간 몸은 많이 힘들었지만, 그 일은 내가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나는 책임자라는 긍지를 갖고 재미있게 그 일을 해냈다.


그런데, 문제는 분석 설비 및 분석법 setup이 다 완료되고 나서였다. Setup이 완료된 후에는 분석 설비에서 내보내는 결과들을 확인하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routine 한 일이었다. 재미가 없었다. 정작 일이 많아서 힘들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일이 재미없다고 생각되는 순간 나는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그 분야를 더 detail 하게 공부해서 더 높은 수준의 관리를 하기 위해 공부를 했더라면 좋았을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결국은 나는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윗사람들과 상담을 시작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당시 팀장님은 내가 팀을 옮겨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이 일은 내게 일에 대한 기존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려줬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일이 쉬워지면 더 좋을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야 있겠지만 말이다. 그 이후의 경험에서도 정작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는 회사 일이 힘들 때보다도 회사 일이 재미없을 때였다.


미국의 심리학자 프레데릭 허즈버그는 '사람들이 직업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연구하다가 직장 생활에 만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자아실현을 추구하려는 욕구(motivation factor)와 불쾌감을 회피하려는 욕구(hygienic or environmental factor)이다. 두 가지 욕구는 서로 별개의 요소에 의해 충족된다. 회사 정책, 경영/감독 기술, 급여, 대인관계, 작업 조건 등은 불만을 잠재우는 요인들로, 이것이 충족되면 불만이 사라지지만 이로 인해 직무 만족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일에 대한 책임, 일 자체, 인정과 존중 받음, 성취감, 성장, 도전 의식, 승진 등이 일에 대한 애정을 불러올 수 있는 동기 요인들이다.


대기업에 입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환경요인을 보고 회사를 선택한다. 연봉, 복지, 근로 조건 등을 보고 회사를 선택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알지 못한 상태로 입사하게 된다. 여러 사업부가 있는 대기업의 경우 사업부 배치부터 불만을 품고 바로 퇴사하는 사람도 많다. 많은 회사들이 환경 요인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쏟고 있다. 식당의 메뉴를 늘리거나 개선하고, 사무 환경의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그러나, 동기 요인은 더 복잡하고 사람들마다 최적의 동기 요인이 다르기 때문에 회사 전체적으로 해결해 주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렇다면 동기 요인 충족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일 자체가 본인과 잘 맞아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를 연구했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우리가 행복감을 맛보는 순간은 무언가에 몰입할 때라고 말한다. 하루의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내는 직장인들은 일에 몰입할 수 있어야만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 그리고 몰입에 필요한 최적 조건은 본인의 실력과 일의 난이도 간에 아래와 같은 상관관계가 성립한다. 실력과 난이도가 잘 맞으면 몰입이 일어나면서 일에 매진할 수 있지만 실력에 비해 일의 난이도가 낮으면 지루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반대로 실력에 비해 일의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불안감과 걱정이 증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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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몰두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실력에 맞는 난이도의 일을 찾는 시도를 해야 한다. 본인의 능력에 비해서 업무의 난이도가 낮다면 상사와 상담하고, 필요하면 인사팀과도 논의가 필요하다. 다만, 너무 단기간의 시각으로 찾기보다 긴 호흡으로 찾을 필요성이 있다. 회사 내에서 찾기 어렵다면 회사를 바꾸는 노력도 포함되어야 한다. 반대로 본인의 능력에 비해 너무 난이도가 높은 일일 경우에는 우선은 본인의 실력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서 하는 일이 재미있다. 회사일은 본인이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지만 책임감을 갖고 내 일이라고 생각하며 일을 할 때 일이 재미있어진다. 내 경험에 의해도 맞는 말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회사나 상사의 배려도 필요하다. 일하는 과정에서 담당자가 자기 재량을 많이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간섭을 자제하는 배려 말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배려를 받기 위해서는 그전에 상사가 믿고 맡길 수 있도록 상사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일에 본인의 아이디어를 더하고 애정을 가져야 한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로 인해 사람들의 인정과 존중을 받게 되면 더 책임감을 갖게 되고, 더 재미있게 일하게는 선순환의 사이클에 진입하게 된다.


셋째는 일의 성과가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어야 일이 재미있어진다. 돈이든 상이든,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든 말이다. 규모가 큰 대기업일수록 내가 열심히 일했는데도 그 성과가 자기 것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직장인들이 가장 많이 좌절하는 순간일 것 같다. 조직이 너무 커서 내가 일한 성과가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다. 또는, 열심히 일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보상이 차이가 없어도 열심히 일할 의욕이 사라지기도 한다. 쉽지 않은 문제이다. 그러나, 단기간으로 보면 좌절을 느낄 수도 있지만, 긴 시각으로 보면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인정을 받고 잘 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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