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생활에 시험이 있고 성적이라는 결과가 나오듯이 회사 생활에도 평가가 있고 고과라는 결과가 생긴다.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야만 승진이 가능하고 승진을 해야 회사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 과장급 진급과 부장급 진급의 두 가지 고비가 있다. 과장급 진급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넘기지만 부장급 진급은 고비를 넘기는 게 만만치 않다. 임원 진급이야 워낙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적어도 부장 진급은 해야 회사 생활을 오래 할 수 있다. 부장급 진급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재수 삼수를 하거나, 아주 드물게는 부장 진급을 아예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더러는 진급 가능성이 낮아 보여 아예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여성들에게는 이 고비가 더욱 가혹하게 다가올 수 있다. 보통 과장급 진급을 하고 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임신 중에는 단축 근무를 하고 출산 후에는 1년 정도 육아 휴직을 갖는다. 복직 후 얼마간 다니다 둘째가 생긴다. 또다시 임신 출산 육아의 사이클을 거치다 보면 과장 진급 후 몇 년이 지났지만 제대로 일한 경험은 얼마 안 된다. 그러고 몇 년 후면 부장 진급 시기가 눈앞에 다가온다. 남자 동기들에 비해 업무 경험도 실력도 차이 날 수밖에 없다. 육아와 회사일을 해내느라 육체적으로 지치기도 하고, 육아와의 갈등으로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 고민이 생기기도 한다. 내 상사였던 한 분은 여자들은 임신 출산 후 일에 대한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자주 말씀하시곤 했다.
회사는 사실 일부러 승진 비율을 높이지 않는다. 능력이 안 되는 인력은 자연 감소되기를 바란다고 해야 할까. 그러니 이 좁은 관문을 그것도 여성의 핸디캡을 안고 통과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회사라는 집단은 일을 해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다. 주어진 일을 해내야 하고, 정해진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특히 부장급은 회사 내 리더 위치이므로 리더로서 사람들을 잘 리드할 수 있는지,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는지 보여줘야 한다.
과장급 3년 차였던 걸로 기억한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할 생각이었던 나는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이대로 회사 생활을 계속해도 될지 뭔가 변화를 줘야 할지 직장인으로서의 나를 마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일하는 자세가 소극적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느 분야에서라도 전문가라는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당시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서는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였다. 바로 위의 상사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자원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일했다. 새로운 분야여서 많은 논문을 읽으며 공부를 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의 발표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렇게 3년쯤 지나자 주변 사람들이 나를 그 분야의 전문가라고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나를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는 듯했던 상사의 태도도 변했다. 그 경험 덕분에 부장 진급도 가능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변화하지 않았더라면 부장 진급이 어려웠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지속하기도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무엇보다 그때의 경험은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주변의 환경을 탓하기보다 내가 변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에 올해 부장 진급에서 누락된 여자 후배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상사를 탓하면서 그가 자신을 싫어해서 자신이 일을 잘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평가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진단이 맞을 수도 있지만, 그런 진단을 하면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본인을 먼저 돌아보고 본인이 동원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성으로서 진급의 고비는 남자들에 비해 어려운 게 사실이다. 본인의 경쟁력을 진단해보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짜야한다. 요즘은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배려 제도가 많다. 그러나, 그 배려 제도 속에서 소극적으로 일하는 것이 체질화되면 안 된다. 마음 단단히 먹고 스스로의 틀을 깨고 나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 번이라도 그런 노력을 시도해 본 사람은 후에 그 경험을 발판 삼아 다른 도약을 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