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에는 밀당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단순한 연애 기술 이야기가 아니다. 이 말은 인간의 기본 심리를 정확히 짚은 말이다. 사람은 이미 손에 넣은 것, 혹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는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손에 닿지 않는 것일수록 더 애타게 바라게 된다.
취직 준비생일 때는 “입사만 하면 무엇이든 하겠다”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막상 입사를 하고 나면, 그 마음은 빠르게 휘발된다. 회사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쌓이고, 일상이 권태로워진다.
내가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지만, 몇 년이 지나자 갑갑함이 밀려왔다. 학교는 입학도 있고 졸업도 있고, 그 사이 방학도 있었다. 친구와 선생님이 매년 바뀌며,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회사는 다르다. 방학도, 개학도 없이 비슷한 날들이 이어진다. 3년쯤 지나자, 내 일상도 마치 끝없는 터널처럼 답답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여러 가지 규제가 많았다. 퇴근할 때마다 X-ray에 소지품을 검사받아야 한다. 아주 가끔은 공항 통과할 때처럼 몸수색을 받기도 한다. 나는 한 번도 회사 기술을 외부로 유출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이 없지만, 늘 잠재 범죄자로 취급받는 듯한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 못했다.
열쇠 관리도 스트레스였다. 지금은 번호키로 바뀌었지만, 예전엔 서랍장마다 열쇠가 있었다. 서랍 안에는 업무 수첩, 필기도구, 논문 몇 장뿐이었지만, 퇴근할 땐 꼭 잠가야 했다. 열쇠를 깜빡 잊고 두고 올 때면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몰래 서랍 밑에 붙여두기도 하고, 눈에 안 띄는 곳에 숨겨두기도 했다. 하지만 정기 보안 점검 때는 귀신같이 들켰다.
한 번은 수십 개가 넘는 열쇠 꾸러미 속에 내 열쇠를 슬쩍 섞어두었다. ‘이 정도면 못 찾겠지’ 싶었지만, 보안 담당자는 결국 찾아냈다. 그는 다음날, 보안 위반자 명단에 내 이름을 올렸다. 아무도 내 서랍장 안의 물품을 탐낼 것 같지 않았지만, 규정은 규정이었다.
꽤 오랫동안 내 부서장이었던 상사는 늘 금요일 오전 회의에서 1시간 내내 잔소리를 쏟아내곤 했다. "보안 유지 잘해라, 업체 사람들에게 접대받지 말아라, 애국심을 갖고 일해라" 뭐, 이런 내용이었다. 이것저것 하지 말라는 것이 많았고, 지켜야 할 규칙이 많았다. 감시받는 느낌, 통제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장비 셋업을 위해 장기간 회사를 내방하던 외국인 업체 엔지니어가 내게 말했다.
"너네 회사는 북한 같아."
물론, 그 사이 회사가 많이 변하기도 했다. 요즘엔 과거처럼 잔소리하는 상사도 없고, 서랍장 열쇠로 인한 스트레스도 없다. 그럼에도, 지금도 많은 후배들은 회사 생활이 감옥 같다고 표현하곤 한다. 사내 게시판에는 날마다 회사를 비판하는 글들이 쌓여 가고 있다.
그러나, 막상 떠나올 날이 되니 감옥이 아니라 든든한 울타리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30년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매달 같은 날, 월급이 통장에 찍혔다. 그 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생활의 숨결이었고, 세월의 박동이었다. 그 일정한 리듬이 내 삶의 안정을 지탱했다. 그것이 있었기에 아침에 출근할 의미가 있었고, 한 달을 계획할 여유가 있었다. 이제 그 리듬이 멈추려 한다. 통장에 더 이상 입금 알림이 울리지 않을 날이 곧 온다. 그 단조로운 알림음이 이렇게 그리울 줄은 몰랐다. 한때는 너무 당연해서 신경조차 쓰지 않았는데. 그 소리가 멈춘다는 사실이 새삼 마음 한켠을 허전하게 만든다.
그리고, 명함.
한때는 너무 익숙해서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 얇은 종이 한 장이 이제는 내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명함은 단순히 이름과 직함이 적힌 카드가 아니었다. 내 존재를 증명해 주는 ‘사회적 이름표’였다. ‘나는 이곳에 속한 사람입니다’라는 무언의 선언이 담겨 있었다. 그 속에 사회적 역할과 존재 이유가 함께 들어 있었다.
이제는 ‘어느 회사 누구’가 아니라 단지 ‘나’로만 남는다. 자유롭지만, 동시에 어딘가 공허하다. 그 명함이 사라질 때가 되어서야 깨닫게 된다. 직장은 단순히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나를 증명하던 하나의 틀이었다는 것을.
건강할 때는 건강의 소중함을 잊듯, 회사에 있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른다. 하지만 떠날 때가 되면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퇴사를 결심한 후, 오히려 회사에 대한 애착이 짙어지는 나 자신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오래 머물렀던 공간, 오랜 관계와의 이별 앞에서는 늘 복잡한 감정이 교차한다. 회사는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내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준 익숙한 세계였다. 떠나는 순간, 그 안정된 틀을 잃는 것이 두렵기에 우리는 ‘그래도 나쁘지 않았지’라며 자신을 다독인다.
이별이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가치도 더 선명해진다. 너무나 당연했던 동료들과의 사소한 대화, 웃으며 함께 즐겼던 회식 자리들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는 보상적 감정반동으로, 이별의 슬픔을 덜기 위한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까.
결국 퇴사 전의 애착은 불안, 감사, 그리움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의 산물이다. 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저 인정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진짜 ‘잘 마무리하는 법’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