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금단 증상이란 월급에 대한 의존과 반복되는 금단 증상,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심리적·실질적 변화 시도를 의미한다. 불안, 우울, 무기력, 수면 장애, 집중력 저하 등 다양한 금단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월급은 직장인에게 '마약'에 비유될 만큼 강한 의존성을 유발한다. 월급 금단은 단순한 금단 현상이 아니라, 노동과 소비 구조에 내재된 심리적·사회적 문제로, 실질적 변화와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퇴직을 결정하고 가장 먼저 나를 찾아온 것은 ‘월급 금단 증상’이었다. 30년간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끊길 거라 생각하니 불안과 우울이 몰려왔다. 오래 담배를 피운 사람일수록 금연이 더 어렵듯, 회사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일수록 월급에서 벗어날 때의 금단 증상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맞벌이 부부였기에 국민연금도 둘 다 받을 수 있고, 퇴직금을 합한 규모도 외벌이 가정에 비하면 나은 편일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유지해 온 생활 수준을 그대로 이어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한없이 위축되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이 월급 금단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 가계부부터 들여다봤다. 그동안 해마다 얼마를 써왔는지, 항목별로 대략의 지출 규모를 정리해 보았다. 이어서 고정 지출 항목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보니, 퇴직 후에는 오히려 고정비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월급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가던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개인연금 보험료를 이제는 직접 납부해야 한다. 하루 세끼를 대부분 회사에서 해결했는데, 이제는 이것도 온전히 나의 몫이다. 여기에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돈 쓸 일도 많아질 것이다. 각종 세금, 자동차세, 자동차 보험료까지 합산해 한 달에 필요한 금액을 계산해 보니, 지금껏 써오던 지출 규모를 줄이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월수입을 마련할 것인가. 몇 년 전부터 퇴직을 염두에 두고 상가 투자도 검토해 보았다. 그러나 적절한 매물을 찾기 어렵고, 높은 세금과 상가의 감가상각, 각종 비용을 고려하면 마땅히 끌리는 선택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현금성 자산을 조금씩 깎아 먹으며 사는 것은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배당주 투자였다. 퇴직 후에도 월급처럼 배당을 받으며 살 수 있다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것 같았다. 게다가 퇴직연금 계좌 안에서 배당을 받으면 세제상 혜택이 크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요즘은 퇴직연금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월배당 ETF들이 다양하게 나와 있다. 특히 커버드콜 ETF 가운데는 연 10%가 넘는 분배금을 지급하는 상품들도 여럿 있다. 물론 커버드콜 자체의 위험성이 있고, 현재 수준의 분배금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기에, 여러 상품에 분산 투자하는 것은 필수다. 올여름 DC형으로 전환한 퇴직연금 계좌에서 월배당 ETF와 TDF 등을 섞어 운용해 보니 대략 연 6~7% 수준의 분배금을 받을 수 있었다. 매월 같은 금액이 꼬박꼬박 들어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월급처럼 정기적인 현금흐름을 만들어 준다는 점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퇴직 후에는 지금보다 지출을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실행한 것이 냉장고와 옷장 정리였다. 사놓고 상하게 만들기 일쑤였던 식재료를 정리해 낭비를 줄이고, 옷장을 정돈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려는 일종의 다짐이었다.
다만 씀씀이를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퇴직 후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도 또 다른 문제다. 우리보다 일찍 고령화를 겪은 일본에서는 자산이 충분한데도 돈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나라 곳간만 채우고 떠나는 노인이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돈을 쥐고 있으면서도 활용하지 못해 노년의 삶을 스스로 방 안에 가둔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을 쓰는 데 있어서의 ‘적절한 밸런스’다.
나는 그 밸런스를 찾기 위해 앞으로의 소비 방향을 “소유보다 경험”으로 정리했다. 돌아보면 맞벌이라는 바쁜 일상을 핑계로, 생활의 편의를 높여준다는 각종 소형 가전을 참 많이도 사들였다. 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몇 번 쓰다 말고 찬장 한구석에 자리만 차지하곤 했다. 옷이나 신발도 관리가 잘 되지 않아 비효율적으로 샀던 경우가 많다. 이제는 이런 소유 중심 소비에서 벗어나, 여행과 배움, 건강처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경험에 더 많이 쓰고자 한다.
이제 돈은 ‘더 많이 갖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남은 시간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를 결정해 주는 도구에 가깝다고 느낀다. 오래 기억에 남는 여행, 새로운 것을 배우며 느끼는 성장의 즐거움, 건강을 지키기 위한 투자처럼, 시간이 지나 자산처럼 쌓이는 경험에 우선순위를 두려 한다. 그렇게 인생 2막에서는 통장의 숫자보다는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가 더 중요해지기를, 그래서 많은 것을 소유하기보다 그날그날의 삶을 풍부하게 해 줄 경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