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 동안 한 번의 육아휴직과 몇 차례의 병가를 경험했다. 그러나 매번 그 끝에는 뭉근한 찜찜함이 남았다.
출산 3주 전, 육아휴직을 시작했다. 입사 후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었기에, 출산 전에 나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느긋하게 하루를 보내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휴직계를 내고 퇴근하던 날, 회사 정문을 나서자마자 산통이 시작됐다. 그대로 병원으로 실려 갔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햇살 좋은 창가의 하루’는 그렇게 날아가 버렸다. 이후의 시간은 말도 통하지 않는 작은 생명과 씨름하는 나날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힘들었다. 육아휴직 내내, 왠지 사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문장 중간의 쉼표처럼, 내 삶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잠시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십여 년 전에는 허리디스크 수술로 3주 병가를 냈다. 그러나 수술이 잘못되어 다시 디스크를 걷어내는 수술로 이어졌고, 병가는 7개월로 늘어났다. 내게 시간은 늘 모자라는 자원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남아도는 시간’을 경험했다. 거동이 불편해서 더 그랬겠지만, 그 시간은 축복이 아니라 공포에 가까웠다.
방이 답답해 거실에 매트리스를 깔고 지냈다. 주말에는 남편과 아이가 있어 그나마 괜찮았지만, 주중이면 하루 종일 혼자 누워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책을 읽거나 TV를 보기도 했지만,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았다.
일요일 저녁, 그때 드라마「넝쿨째 굴러온 당신」과 「신사의 품격」이 내게 작은 위안이었는데,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한 주는 또 어떻게 보내지?’
거실 천장이 천천히 내려오며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당시 13층에 살았는데, 한밤중에 깨어 얼마나 자주 아래를 내려다봤는지 모른다.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겨우 그 시간을 버텨냈다. 남아도는 시간이 자유와 행복이 아니라 저주가 될 수도 있음을 몸으로 배운 시기였다.
퇴직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다. 처음 몇 달은 여행도 다니고, 그동안 못 해본 일들을 하며 비교적 즐겁게 지내지만, 그 이후에는 허탈함과 무료함이 밀려온다는 것이다. 나 역시 두렵다. 휴직 때 그랬던 것처럼, 퇴직 후 남아도는 시간을 감당하지 못해 삶이 맹탕처럼 느껴지지는 않을지.
그래서 퇴직 후에는 ‘일상의 설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닐 때처럼 빡빡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하루를 붙잡아 줄 적당한 루틴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금세 나를 삼켜버릴 테니까.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장소의 문제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대략 일흔 편 정도의 글을 썼는데, 가만히 돌아보니 집에서 쓴 글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주말 카페에서였다. 집에서 글을 쓰려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집에서는 생각만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내 몸이 장소를 기억하고, 그 장소에 맞는 행동을 패턴처럼 불러내는 게 아닐까 싶다. 카페에 앉으면 쓰는 사람이 되고, 집에 있으면 쉬는 사람이 되는 식으로. “퇴직 후의 일상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보다, 몸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퇴직 후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만 보내는 것은 꽤 위험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사무실은 아니더라도, 정기적으로 몸을 데려가야 할 장소 하나쯤은 반드시 필요할 것 같다.
다행히 걸어서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다. 주 4일은 그곳으로 출근할 예정이다. 하루 4시간 정도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생각이다. 도서관이 맞지 않으면 공유 오피스도 고려하고 있다. 나머지 3일은 늦잠을 자거나, 미술관이나 오프라인 서점을 다니고, 멀지 않은 곳으로 소소한 나들이를 할 것이다.
그리고 퇴직 후에는 몸을 쓰는 활동을 더 늘릴 예정이다. 지금 주 3일 하던 근력운동은 횟수를 늘리고, 셔플댄스는 주 2회로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걷기, 땀 흘리기, 리듬을 타는 일처럼 몸이 먼저 반응하는 활동들이 나를 다시 현실에 붙잡아 줄 거라고 믿는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아무 일정도 없는 자유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축복이 아니라 공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번만큼은, 시간에 나를 맡기지 않으려 한다. 시간을 설계하고, 장소를 정하고, 그 안에서 다시 나의 하루를 살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