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살다가 죽어도 괜찮겠다 싶을 때까지
언젠가 유튜브에서 JYP 박진영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요즘은 이대로 살다가 죽어도 괜찮겠다 싶어요.”
어떻게 살아야 ‘지금 이대로라면 죽어도 괜찮겠다’는 마음에 이를 수 있을까.
내 마음은 아직 그 지점과는 거리가 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내가 좋아하는 이찬혁의 노래 '파노라마' 속 이 가사가 지금의 나와 더 닮아 있다. 아직 아쉬운 게 많고, 해보고 싶은 일들도 너무 많다. 퇴직 후 10년쯤 지나, 그동안 마음속에만 품어두었던 일들을 어느 정도 해보고 나면 그제야 JYP의 말을 이해하게 될까.
수첩을 꺼내 버킷리스트를 적어본다.
한 권이라도 책 출간하기
혼자서 3개월 이상 영어 어학연수 가기
창업해 보기
해외 한 달 살기 다섯 곳 이상 해보기
이탈리아, 스페인, 프로방스 여행하기
마당 있는 집에 살아보기
대략 이런 것들이다. 실제 수첩에는 이보다 다섯 배쯤 더 적혀 있다. 적어놓고 보니, 하나같이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은 ‘시간이 없어서’ 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물론 돈도 필요하다. 하지만 돈은 형편에 맞게 수준을 조절하면 된다. 문제는 늘 시간이었고, 용기였다.
“만약에 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나는 안장 위에서의 일생을 택하겠노라.”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에 나오는 이 문장은 30대 초반부터 내 심장을 두드려 왔다. 어딘가에 매인 삶이 아니라, 자유롭게 세계를 떠돌며 유목민처럼 살고 싶다는 꿈을 오래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과 꿈 사이에서 망설이다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요즘 나는, 나와 같은 꿈을 꾸었고 실제로 그것을 선택한 한 여인의 책을 읽고 있다. 30대 중반에 회사를 그만두고 20년 넘게 여행자로 살아온 사람. 나와 비슷한 또래지만, 그녀는 내가 고민만 하다 내려놓은 삶을 그대로 살아왔다. 그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한다. 만약 나도 30대에 그녀처럼 회사를 떠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때는 용기가 없어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한 내가 못났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30년을 포기하지 않고 회사를 다닌 내 삶 또한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를 선택했다면 갖지 못했을 가족도 내겐 있으니까.
그리고 작은 위안 하나.
이제는, 그 꿈을 다시 꺼내볼 기회가 내게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때는 이런 날을 맞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다행히 30대에 비해 자금 사정도 조금은 나아졌고, 무엇보다 더 이상 “언젠가”라고 미룰 이유가 없다. 이번에는 메모장 속 목록으로 남겨두지 않고, 하나씩 삶으로 옮겨볼 생각이다.
언젠가 나도 “이대로 살다가 죽어도 괜찮겠다”라는 말을 담담하게 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