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바라보듯 마음도 그러하게

'나를 등지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


때때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나의 기억 속을 헤집어 놓는다. 울컥 솟아오르는 단어나 문장들로 인해 나도 모르게 내 얼굴과 머리가 무거워진다. 내 머릿속에 어떤 검열관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내고 이것저것 생각이 나는 대로 적어 내려 간다. 마치 누군가 내 감정을 건드리는 듯하다. 아무런 걱정 없이 아무 생각 없이 할 일을 하다 어떤 한마디로 인해 심장이 멎어 들어가는 것과 같다. 트라우마인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에겐 무수한 표정이 있다. 즐겁고 행복한 혹은 슬프고 무력한, 서로 상반된 표정들이 얼굴 곳곳에 숨어있다. 그중 난 냉소적인 표정을 싫어한다. 지적을 당하거나 거절당하는 느낌이다. 잘 못 건드리면 방심한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마치 큰일이 난 것처럼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 마냥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탓을 하는 말과 행동에서 좌절감을 맛본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잊어버릴 수 있는데 그런 상대의 실수와 허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일어나면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처럼 도덕적인 결함을 발견한 것처럼 당장 신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하는 표정이다.


그의 냉소적인 표정을 또다시 마주해야 했다. 에어컨을 틀고 깜박하고 안 닫은 방문을 보며 그는 나를 쏘아보았다. 미처 문을 닫지 못한 것이 큰 사고인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싸한 눈빛으로 인해 나는 죄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상대가 실수라고 지목하는 행동으로 인해 자책을 하게 된다. 원래부터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못난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자책은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부모님의 성향으로 인해 모자라 보이는 나에게 기대가 없다 느꼈던 순간 저 밑 어딘가에 숨어있던 미움과 증오가 올라온다. 사람을 좋아하고 좋은 관계를 맺고자 했던 내가 어찌 부모님을 미워하게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원치 않게 꼬여버린 마음을 아무리 풀려해도 풀어지지 않는다. 단단히 묶여버린 끈을 어떻게든 풀려 손톱으로 건드려봐도 풀어지지 않아 내팽개치는 것처럼 사라지지 않는 감정을 내던져버렸다.


던져버린 감정을 흘려보냈다 확신을 했지만 서운함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설거지를 깨끗이 한다 해도 보이지 않는 잔류 세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봉지에 담긴 즙을 남김없이 먹으려 열심히 흔들어 마셔도 봉지 안쪽에 진액이 남아있는 것 같은 느낌과 같았다. 내 마음의 불신과 미움이 그렇게 마음속 스크래치로 남았다. 상처 위 딱지를 뜯고 뜯어 생겨버린 흉터는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 그대로 남아있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저자이면서 세계적인 글쓰기 강사인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했다. 자신의 글에 검열관을 세우지 말고 글이 글로써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했다. 마음도 그런 것 같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바꾸려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내 마음도 억지로 변화시킬 순 없다. 그저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놔주어야 한다.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을 표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을 주변의 풍경을 보며 걷듯이 지나가야 한다. 해가 넘어가며 노을이 지듯이 그렇게 마음이 마음으로 넘어가는 것을 바라봐 주어야 한다.




살갗이 타들어가는 무더운 여름이다. 나를 등지던 모습이 냉소적 표정으로 드러난 날 그렇게 내 마음도 타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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