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먹지 않고 글을 쓰고 싶다. 잘 써질 때는 잘 써지는 것 같은데 이렇게 첫 줄부터 막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생각의 빈곤이라고 해야 할까. 아... 막막하다. 돈 주고 글쓰기 강의도 듣고 책도 사다 읽어봤는데 결국엔 나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니까. 누군가 글쓰기 강의나 글쓰기에 관련된 책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면 - 글쓰기에 대한 결과가 급한 것이 아니라면 - 일단 듣거나 읽지 말고 잠시 보류해 두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니까. 대신 글을 쓰는 수업이나 모임이 있다면 적극 참여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를 찾을 수도 있고, 동기부여도 될 테니 말이다. 글쓰기는 압박을 해야 한다고 한다. 10분, 20분, 한 시간 이렇게 시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는 동안 흘러가는 내 생각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다. 어떤 검열관도 들어올 수 없도록 오로지 내 생각을 편견 없이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글쓰기는 존재 가치와도 연관이 되어있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해온 가족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에서 느껴온 '나'라는 존재가 글 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글은 날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든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오롯이 나를 바라봐준다. 오타가 있어도 문맥이 맞지 않아도 그 자리 그대로 있어준다. 그저 날 지켜봐 준다. 내 존재를 인정해준다.
'가만히 들어주었어'라는 그림책이 있다. 책 제목 그대로 토끼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아이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힘들어할 때도 그저 옆에 있어주었다. 아이는 결국 자신의 감정을 잘 정리해 다시 시도해보았다. 사랑도 존재도 그런 거다. 글쓰기처럼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하기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채근하지 않고 충고하지 않으면 아이는 어느샌가 스스로 옷을 입고 스스로 밥을 먹는다. 가만히 바라봐 주었을 때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글쓰기와 존재.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다. 아무것도 거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이고 거기서 진솔함이 나올 수 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내려 갈 수 있다. 그 어떤 마음도 상황도 다 써내려 갈 수 있다. 아무도 내 이야기에 태클을 걸지 않으니까. 만약 누구를 대상으로 써야 하는지 정해져 있다면 아마도 나의 생각과 창조성이 꽉 막혀 버려 빈 화면만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고치는 건 다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