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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May 31. 2023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

갈등을 피하지 말고 할 말은 하고 살자

폭풍 같았던 연휴가 지나가고 다시 노트북을 앞에 두었다. 그동안 노트북도 말썽이고 남편과 나 사이도 말썽이었다. 몇 주간의 갈등을 이제야 풀게 됐다. 차곡차곡 쌓아둔 불평불만들이 폭발해 버렸다. 아이들도 초긴장 상태였다. 


갈등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지만 할 말은 하기로 했다. 아이에게도 피하지 말고 아빠에게 무서우면 무섭다고 싫으면 싫다고 이야기하라고 했다. 갈등이 없는 집은 없다. 완전한 평화도 없다. 평화주의자라는 명목 아래 서로 간의 미묘한 시선을 거두어버리는 것은 되려 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생각했다. 아이들도 친구들이나 부모, 형제자매와 크고 작은 갈등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갈등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 때 두려워 피하기만 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은 말하지 못하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는 '착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남편은 잔소리가 많은 사람이지만, 정작 자신은 그 잔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거기에 억양까지 높아지면 연신 소리를 낮추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할 말은 해야겠다며 쏟아낸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우리가 매번 다투는 이유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절당하는 일이 많아서였을까. 유독 내가 무언가를 원할 때마다 갈등이 생겼다.


직접적으로 원하는 것을 잘 표현하지 못했던 나는, 남편에게 직접 말하기보다는 남편이 내가 원하는 것을 우연하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 들어서는 대화가 많지 않고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은 나의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고 글로 드러나는 나의 생각에 화를 냈다. 


갈등을 직면하는 것은 괴롭고 힘든 일이지만 덕분에 나의 마음을 남편이 알게 된 것에 대해서는 잘됐다 생각한다. 심리학 공부를 시작하고 관련 도서를 사 읽으면서 그것이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남편은 공부를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지, 해야만 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육아와 살림이 힘들다고 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면 주변을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비난이라 여겼다. 남편이 무엇을 원해서 이렇게 말하는지 알지 못했다.




계속해서 남편이 내가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니, 나는 "오빠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거야? 왜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싫어하는 거야?"라고 말했다. 남편은 이에 대해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고 에둘러 표현했다. 이유를 정확하게 말하기보다는 상대의 행동을 지적하니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다.


나는 "오빠가 왜 그러는지 무엇을 원하는 건지 이야기해 줘. 나의 행동만 지적하지 말고."라고 말했다. 한 번씩 터지는 남편의 분노는 레퍼토리가 항상 같았다. 원인은 매번 똑같은데, 항상 '나메시지'가 아닌 '너 메시지'로 말하니 비난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억울하다 했다. 지난 결혼 생활 10년 동안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변을 잘 보지 못한다'라고 했다. 나는 이 말이 비난처럼 들려 이 말 뒤에 있는 남편의 욕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변을 잘 보지 못한다.'


남편의 화나 있는 억양대로 들으면 비난처럼 들리지만 문장으로 보면 감정이 섞이지 않은 사실처럼 보인다. 그렇다. 나는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해야 하는데 결혼생활을 하면서 제지를 받으니 힘들었다. 상의를 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해야 했다. 상의를 하더라도 이미 마음속으로는 결정을 한 상태였다.

 

나의 일에 집중하니 남편을 찾는 일이 적어졌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함께 일찍 잠에 들었고, 이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겼다. 무시한다고 생각하니 지난 10년의 결혼생활이 떠오르면서 억울하다 했다. 자신이 벌어온 돈으로 책을 사 읽는 것도 억울하고 아깝다 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 것 자체보다 그 행동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낀 것이다. 아내인 나는 자신(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새 책도 소 읽고 공부도 하는데,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일만 하는 자신(남편)이 노예처럼 느껴져 억울하다 했다.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위 문장에 대한 말의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남편의 느낌과 욕구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의 말로 정리해 본다면 이렇다. "나는 당신이 힘들다고 말하면서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으니 잠을 덜 자서 건강이 나빠지는 것 같아서 걱정됐어.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을 더 잤으면 하길 바랐어." 

"나는 당신이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기 위해 잠을 일찍 자야 하니 우리가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내는 날이 많지 않아서 아쉬웠어." 


챙김을 받고 싶었던 남편은, 혼자 밤을 보내는 날들이 늘어나니,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남편은 내가 책을 사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너 메시지'만 들릴 때는 남편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라고 늘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남편의 느낌과 욕구들을 알게 되니 미안하기도 하고 안심도 됐다. 남편의 억울하다는 말에 나의 "나만 없어지면 되겠네" 하는 말은 맞지 않는 말이었다. 남편은 날 싫어하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의 억울한 감정이 있어도 그동안 내가 하고자 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막지는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마다 갈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하게 해 주었다. 내가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코로나 때문에 걱정되어 취소하기를 바랐다. 콘서트가 있는 달에 코로나 환자 수가 줄어들면 보내주겠다 했지만 전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내 의지를 꺽지 못했다. 아이에게 엄마 콘서트 갔다 오라고 전해주라고 했다. 


노트북이 오래되어 작동이 잘 안 되다 완전히 망가져 버렸을 때도 남편은 노트북을 사주었다. 비싼 제품은 아니었지만 나름 작동도 잘되었고 속도도 빨랐다. 남편은 "네가 글을 쓰는 것을 내가 반대했다면 노트북을 사주었겠냐"라고 말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새벽에 글을 쓰기 위해 일찍 잠에 들어야 했고, 집안 정리도 일찍 해놓아 청소도 살림도 열심히 한다 생각했지만 남편에겐 그것마저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남편은 청소와 살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이 구석구석 손이 닿지 않은 곳들을 지적하는 이유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변을 잘 보지 못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싸우기 전으로 돌아왔다. 아이들도 안정이 되어가는 듯했다. 부모의 싸움은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부모가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아야 한다. 싸우는 것만 보면 마음에 상처가 될 테지만 부모가 대화로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들도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도 배우고 싸움이 끝나고 풀었다는 사실에 안도를 하게 된다.


우리 부부가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이 맞다 아니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목소리만 높이고 진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부모의 싸움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계기로 나의 속마음을 풀어낼 수 있었고 원하는 것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용기 내어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콘서트 겨울에 가지 않고 다음 달에 가도 돼?"


남편이 말했다. "콘서트 당일까지 말하지 말걸 그랬어." 




언젠가 이 글을 읽을 남편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여보 고마워. 사랑해. 콘서트 잘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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