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쪽쪽거림으로 자신의 허전함을 해결하고 안정감을 느낀다. 특히 잠이 들 때는 쪽쪽이가 필수다. 그런 쪽쪽이가 없어지면 아기도 나도 불안하다. 아기에겐 쪽쪽이가 없어서는 안 될 안정템이다.
나에게도 쪾쪽이가 있을까? 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할 때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줄 쪽쪽이는 무엇일까. 가끔은 내가 급한 성격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글을 쓰고 올릴 때 퇴고를 하고 올려야 하는데 바로 올려 버릴 때가 많다. 올리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문장의 앞뒤가 안 맞을 때도 있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잘 안 되어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수차례 다시 클릭해 고치고 또 고친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고치고 어느 정도 완성된 후에 올려야 하는데 내 글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다.
나는 설레면서도 불안하고 초조했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했다. 시작을 했으니 될 때까지 나는 달려야 했다. 그것이 지금 내 삶의 중심이 되어 나를 지탱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겐 내 삶을 지탱해주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나를 붙잡아 주는 도구는 때마다 달랐다. 중고등 학생 때는 기획사 오디션을 주말마다 보러 다녔다. 연예인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오디션장으로 가는 것 자체가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행위였던 것 같다. 집에서 받지 못했던 정서적 안정감을 하나의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해소했던 것 같다. 지나왔던 과거들을 돌아보면 크게 이룬 결과들은 없지만 나는 늘 무언가를 해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결혼생활 초기엔 서울예대 문창과에 들어가겠다며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까지 가서 과외를 받았다. 과외를 받아 서울예대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였겠지만 이때도 역시 과외를 받으러 이동하는 행위 자체로 안정감을 느끼려 했던 것 같다. 과외를 받다 임신을 해서 그만둬 버렸다. 시험과 면접은 보았지만 떨어졌다. 임신 후엔 같이 네트워크 사업을 하자며 학교 선배에게 연락이 와서 이때도 똑같이 한 시간 이상 걸려 어딘가로 갔다. 이득을 보거나 잃지도 않았다. 코로나가 오고 난 후엔 운동을 했다. 운동밖에 몰랐다. 새벽에 일어나 홈트를 하고 오전엔 크로스핏과 복싱을 했다. 식단도 병행하며 내가 정해놓은 툴 속에 나를 가두었다. 그래야 안심이 되었고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누구도 봐주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의 만족감을 찾으며 나 자신을 나 스스로가 우러러보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글 쓰고 나 자신을 찾으며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울부짖는 것 같다. 하루라도 글을 안 쓰면 안 될 것 같고 하루라도 놓치면 다시 하지 못할 것 같고 발전하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다. 존재에 대한 인정. 그건 어떤 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사람 자체로 귀하다고 인정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하물며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넌 무엇을 잘하지 않아도 내 귀한 자식이다. 소중한 딸이다. 이렇게 이야기해주었다면 이상을 쫓아가려 애쓰지 않았을 텐데.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에쓰지 않았을 텐데.
나는 기다림이란 쪽쪽이를 찾았다. 남편이 화가 나도 풀리길 기다렸다. 관계에 대한 기대도 내려놓았다. 책을 내고 싶다는 간절함을 더 나은 글을 쓰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결과물을 내고자 하는 조급함을 내려놓자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는데 집중하게 되었다.
아기를 보며 글을 쓰던 나는 아기를 보며 글을 쓰느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해야 했다. 글을 쓰다 우는 아기를 달래고 떡뻥도 쥐어주고 손과 얼굴에 묻은 과자를 닦아주었다. 정신없이 글과 아이를 왔다 갔다 하며 떠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졸려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기에게 쪽쪽이를 물려주었다. 아기는 엄마 품에 안겨 쪽쪽이를 물고 안정감을 찾고 차분해졌다.쪽쪽 소리를 내며 편안해 하던 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아기띠로 아기를 앉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기의 무게로 어깨가 내려앉지만 손은 자유로와 안정을 찾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