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사랑한다는 속삭임이 가득한 하루하루다. 나는 매일 같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볼과 이마에 연신 뽀뽀를 해댄다. 특히 막내에게 사랑의 표현을 많이 한다. 아직 14개월 밖에 안된 어린 아이라 하루종일 붙어 있기 때문에 첫째와 둘째보단 아무래도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하게 된다. 사랑받는 아이의 모습은 마치 천국을 연상시킨다. 천국이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 이런 감정이지 않을까. 엄마의 사랑한다는 속삭임과 뽀뽀는 아이를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로 만든다. 엄마도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엄마가 된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부귀영화도 부럽지 않게 한다.
아이는 돌이 지나니 고집이 세져 본인이 하고자 하는 건 꼭 해야만 한다. 손을 닦이거나 엉덩이를 닦일 때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신기한지 물을 끄면 계속 틀어달라고 떼를 쓴다. 처음엔 몇 번 틀다 끄다를 반복하다 더 이상 물을 틀어 놓을 수 없어 아이에게 이제 그만! 을 외치며 아이를 안고 화장실에서 데리고 나온다. 아이는 계속하고 싶은지 소리를 지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루 종일 떼쓰는 아이를 데리고 있다 보면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 어린이집에 보내고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내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 것인지,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 조금 더 데리고 있고 싶다.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다.
고집이 세지는 시기임에도 나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최대한 아이의 욕구를 이해하고 수용해주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걸 하고 싶은 대로 해주지는 않는다. 대신 나는 "oo가 이게하고 싶었구나. 재미있지? 신기하지?" 등의 말을 한다. 거기에 이렇게 덧붙인다. "계속 물 놀이 하면 좋지만 물을 계속 틀어놓을 수는 없어. 그러니 이제 그만하자". 그럼 아이는 금방 떼를 멈춘다. 다시 다른 놀이에 흥미를 가진다.
아이를 기를 땐 인내심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아이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몸무게가 10킬로를 훌쩍 넘는 아이를 안고 업는다. 떼쓰는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나의 사랑이 뚝뚝 떨어진다. 하루 종일 아이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뽀뽀를 해댄다. 그럼 아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어여쁜 소리를 낸다. 오늘 나는 사랑한다는 말 다음에 "엄마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아이는 더더더 행복한 표정과 몸짓을 선보였다.
아이는 한 번씩 놀잇감을 가지고 내 무릎에 앉아 논다. 엉덩이를 쑥 내밀고 앉겠다는 표시를 한다. 그럼 나는 아이를 꽉 끌어안는다. 아이가 엄마에게 다가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한 것이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 값진 사랑과 행복으로 다가온다. 아이는 혼자 놀다가도 엄마에게 다가와 안긴다. 피곤할 땐 내 다리를 베고 눕기도 한다. 아이가 내 품에 안기면 '엄마 냄새'를 맡고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럼 난 또다시 엄마의 사랑의 냄새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는다. 내가 느껴보지 못한 엄마의 찐사랑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 굉장히 많이 울었다고 한다. 한 번 울면 그치질 않았다. 거기다 울음소리까지 커서 늘 엄마를 곤욕스럽게 했다. 이웃에게 피해가 될 정도로 크게 울었으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언니와 나를 키우면서 힘들었던 기억 밖에 없다던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된다. 그런데 오늘 난 내가 아기였을 때 왜 그리 많이 울었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겼다. 셋째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마의 찐사랑이 부족했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도 엄마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어릴 때만 예뻐하고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일관되게 나는 엄마를 힘들게 했고, 엄마는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나를 예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다하셨고 지금도 그렇게 해주고 계시지만 어딘가 늘 마음 한구석이 아쉽고 아픈 것은 어쩔 수 없다.
셋째를 낳고 지금까지 난 단 한 번도 아이에게 힘들다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 적이 없다.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아픔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 힘들어도 절대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바라만 봐도 사랑스럽다. 물론 첫째와 둘째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짜증을 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을 절대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엄마가 짜증 난 이유를 설명하고 미안하다 사과를 한다. 그다음엔 아이에게 바라는 바를 이야기한다. 그럼 아이도 수긍을 한다. 첫째와 둘째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셋째 때문이다. 셋째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꽉 안아주고 뽀뽀해 주는 등 사랑의 표현을 했을 때 아이가 주는 사랑을 바라보면서 사랑을 사랑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에 그 어떤 앙금도 남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무한정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엄마를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보여주는 사랑으로 집을 안전지대라 여긴다. 거기에 아빠의 사랑이 함께 하니 아이들은 더욱더 즐거워하고 천진난만 해진다. 남편과 싸울 때도 많았지만 이젠 내가 변하기로 결심하니 집안이 안정되어 감을 느낀다. 아빠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에 화답이라도 하는 듯 아이들을 번쩍번쩍 들어 안아준다. 안고 빙빙 돌기도 한다. 맨날 속 안 좋다 힘들다 말하는 남편인데 어디서 힘이 나는 것인지 세 아이를 동시에 들기도 한다. 첫째와 둘째는 아빠의 양팔에 매달리고 셋째는 두 손으로 번쩍 안아 든다. 행복해 보이는 남편의 모습을 보니 남편은 가정을 통해 이런 행복을 느끼길 원했구나, 그도 이런 사랑을 받고 싶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남편이 씻은 후에 아이들이 자는 방에 와서 아이들과 실뜨기 놀이를 했다. 이기는 사람은 고수 지는 사람은 하수라며 웃으며 말했다. 둘째가 이기자 남편은 "네가 고수다"라고 말했다. 아이는 이겨서 더 신이 났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밤이었다. 매일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