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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May 19. 2023

평범하고 애매하지만 살아갑니다

삶이 주는 고통과 기회

내가 육아맘으로써 글을 쓴다는 것은, 어느 하나에 나를 국한시켜 표현하고 싶지 않다는 일종의 시위와도 같다. 하루종일 "엄마, 엄마"하며 나를 찾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나를 엄마라는 역할 속에 갇어 놓기엔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다.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사색하고 사유하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중 경험의 부족이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아무래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고, 주로 집 안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보다는 늘 같거나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세상이야기는 주로 인터넷으로 보고 듣는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 어떤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어야 하는지 늘 고민하게 된다. 특정 대상이 있어야 할지 다수를 놓고 써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삶의 소중한 도구이자 평생을 함께하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어느 한 특정 대상을 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삶의 기회는 동등하게 주어진다. 그중 글을 쓰는 이에게는 자신에 대한 알아차림과 통찰력 이란 선물이 더해진다. 글쓰기가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기회다. 사람들은 평생 투사를 하면서 살고,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세상을 대하게 되는데, 글쓰기는 타인을 향한 판단을 걷어내고 나를 직면하게 한다. 현실 자각을 하게 된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연예 뉴스를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 한 번씩 나오는 연예인의 죽음 소식에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죽음이란 건 경험해 볼 수 없어 죽음에 대해 말을 할 순 없지만 삶은 우리가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기에, 삶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극단적 선택 뒤에 따라오는 우울증은 누구나 한 번씩은 겪게 되는 우울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일까. 우울하다는 건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해 생기는 감정일까. 내가 가진 조건들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너무 막막한 현실이어서 좌절감이 들고 결국 목숨을 포기하는 것이 당연해져 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의 가족도 지인도 아니어서 나만의 판단으로 죽음의 이유를 논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것이 평범했고 애매하지만 살아나가고 있는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어쩌면 너무 많이 갖고 있지 않아서, 가져 보지 않아서 욕심이 없는 걸까. 좌절할 정도로 최선을 다해보지 않아서일까. 나 또한 죽음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를 짓누르는 비판 적인 말을 들으면 수도 없이 나 자신이 낮아졌고, 그래서 베란다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며 여기서 떨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죽음에 대한 생각들로 피곤했지만, 바깥의 풍경은 죽음을 생각하기엔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또 햇빛은 얼마나 따스한 지 나들이나 여행을 가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난 죽을 마음도 없었고, 결심도 하지 않았다. 


현실의 고통을 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들 육신을 버리고 간 세상은 현실과는 다른 파라다이스 일까? 드넓은 초원이 펼쳐진 푸르고 아름다운 곳일까? 정해진 수명을 버리고 일찍이 포기하고 간 그곳이, 호텔의 스위트룸보다 하와이의 멋진 해변과 자연경관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울지 그건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은 이상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생이 한 번뿐이라면 충분히 이곳에서 오래오래 살아보면 좋겠다. 힘든 상황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하고 애써도 안된다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절망스럽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일어날 수 있길 바라본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풍족한 환경은 아니지만 원한다면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서 가능한 일이다. 돈이 부족하면 모아서라도 할 수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살다가 어른이 되어 독립을 하게 됐을 때 스스로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매섭다면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헤쳐 나가게 될까. 너무나 힘들어 고통스러울 때 누군가 알아봐 주지 못하면 어떡할까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도시락 싸들고 성인이 된 아이를 쫓아다닐 수도 없다.


내가 내린 결론은 마음이 강하고 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평범하게 사는 사람도 늘 마음속에 크고 작은 갈등들을 품고 산다. 늘 비교라는 것이 따라다닌다. 무엇이 정답인지도 모른 채 뭐에 홀려 더 나아 보이고 좋아 보이는 곳에 눈길이 간다. 마음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갈대처럼 흔들린다. 


감정이 시시각각 변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논다. 그럴 때 하나의 감정에 매몰되지도 왔다 갔다 하지도 않으려면 마음에 강하고 튼튼한 기둥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는 다리가 있어야 한다.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있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도 결코 다른 사람이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 없다.


더 좋은 인생을 만들어 줄 수도 없다. 나의 삶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이나 힘들게 했던 관계들에 묻혀 원망만 하며 살기엔 생이 너무 아깝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우리의 시간은 찰나와도 같다. 언젠가 모두 안녕이란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나간다. 


그래서 난, 그 누구도 환경도 탓하지 않기로 했다. 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부족한 글 읽어주어서 고맙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부족하다거나 잘 썼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뿐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지금을 충실히 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 노력의 결실이 언젠가 오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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