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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Jul 05. 2023

잘 살아내고 있다는 기준

잘 살아내려 노력하고 애쓰는 마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을 사 먹는다. 인스턴트나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는 가급적 피하려고 하지만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로 집 앞 편의점에 간다. 오늘도 아이가 잠든 사이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다 편의점에서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컵라면 하나를 사 왔다. 양심상 라면은 비교적 칼로리가 적은 컵누들을 사 왔다.


이렇게 먹고 나면 한동안은 편의점 음식을 피하겠노라 다짐한다. 건강을 위해 시부모님 밭에서 상추를 잔뜩 뜯어와 밥대신 상추를 몇 겹으로 쌓고 그 위에 고기를 싸 먹었다. 그러기를 일주일 스멀스멀 예전의 식습관이 다시 올라왔다. 두 봉지로 나누어 놓았던 상추는 어느새 한 봉지가 되었지만 나머지 한 봉지에 들어있는 상추의 양은 줄어들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다. 


셋째 출산 이후 10kg 정도 빠졌지만 다이어트를 하지 못해 내 허리와 배 주변은 살들로 둘러싸여 있다. 탄수화물을 줄이고 상추나 토마토 등을 먹으면 1kg 정도 빠지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식습관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늘 같은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기본적인 일상생활에서의 움직임을 제외하곤 따로 운동을 하지 않다 보니 당연히 나의 몸은 늘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아이를 본다는 이유로 홈트도 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것에 더 마음을 할애하다 보니 아이가 잠이 들면 자연스레 책상 앞에 앉는다. 


글을 씀으로 잘 살아나가고 있다고 스스로와 타협을 해보지만 마음 한쪽 구석엔 외모나 몸매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다.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챙기지 못한 외형적인 모습은 자신감을 떨어트리게 한다. 화장을 하지 못하면 모자를 푹 눌러쓰고 뱃살이 티 나지 않게 고무줄 바지에 엉덩이를 가리는 박스티를 입고 다닌다.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지 하는 마음은 나를 안주하게 한다. 조금은 마음이 불안해야 더 움직이게 되고 뭐라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글쓰기와 책 읽기는 불안한 마음을 잠재워 주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비어져 보이는 내 일상의 틈 속에서 잘 살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선물과도 같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모양새를 비교할 수밖에 없는데, 비교로부터 떨어진 나의 자신감을 올려주는 건 역시나 글쓰기와 독서다. 내면을 채우면 채워나갈수록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내면의 깊이를 들여다본다는 자부심이 올라오곤 한다.


물론 같은 상황이어도 나보다 더 노력파이신 분들도 많을 것이고 더 열심히 살아가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 스스로를 두고 보았을 때 이 정도면 부끄럽지 않다는 마음이다. 글쓰기를 통해서 말도 더 조리 있게 할 수 있게 되었고 글의 깊이도 나날이 좋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에 더 이상 나를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사람을 어떠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함을 느낀다.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나가는지는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사회 안에서 가정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해 가며 살아갈 수는 없다. 


발전과 성장은 혼자만의 생각과 관점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글이라는 것도 일기를 벗어나는 것의 기준이 '나'가 아닌 '상대'인 것처럼 사람은 관계 속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아가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잘 살아가는 기준은 바로 '나'와 '너'의 조화다.  




노력이란 건 잘 살아내고 있음의 첫 번째 기준이다. 모든 것은 노력 여하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기보다는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고,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조금이라도 애쓴다면 조금은 더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도 주관적인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무조건 사랑하고 무조건 행복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사랑에는 조건이 없다 말하지만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내가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하는 건 모두 사랑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으로 환경을 바꿔보려는 작은 몸부림이다.


매일의 일상이 나의 의지가 없이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름 인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집안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챙기는 것까지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귀찮고 하기 싫은 마음도 정리해 내려 애쓴다. 모든 것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나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 아이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지내고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을 생각하면 가만히 쉴 수만은 없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고 조금이라도 더 참아보려 애쓰는 한 과정이다. 애쓰는 것을 어디 가서 말할 수 없으니 글에라도 남겨보려 한다.


잘 살고 있다는 말보다 '잘 살아내려 노력하고 있다'는 말이 더 와닿는다. 

 



잘 살아내고 있다는 기준은 그 누구도 정해주지 않았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가 있고 수많은 에세이나 수필이 있어도 나의 이야기에는 그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함이 있기에 잘 살아내고 있다는 기준도 자신만이 알고 있다. 스스로가 정한 기준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기준은 자신만의 기준이고 타협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자신의 기준에서 더 잘살아낸 인생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일이다. 이 정도면 괜찮아하는 마음이라면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조금은 더 이상적인 눈을 키우되 현실적인 자각을 놓치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려 노력한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이 되어있지 않을까.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 어딘가 식상해 보이지만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은 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더 돈을 많이 벌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외형적인 갖춤이 아닌 내면의 갖춤이다.


외형적인 발전과 성공을 경험했더라도 내 마음도 함께 성장하지 않는다면 어딘가 부족한 앙꼬 없는 찐빵 같은 크림 없는 크림빵 같은 느낌이다. 삶을 대하는 데에도 나름의 예의가 필요하다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예의란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가리킨다. 


사람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성찰'이라 생각하는데 부당하고 억울하게 느껴지는 일이 있더라도 바로 분노를 표현하기보다는 먼저 '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제각각 이어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갈등을 겪는다. 그 갈등이 보이는 것도 있지만 나만이 느끼는 갈등의 상황들도 있다.


적극적으로 그 상황에서 느낀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 상황에서 느낀 나의 마음을 잘 정리해 내는 것이 먼저라 생각한다. 그 갈등을 없었던 것처럼 무마시키거나 참으라는 것이 아니다. 조금은 더 현명히 상황과 느낌을 잘 정리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삶을 잘 살아내는 두 번째 조건이다. '너와 나의 조화'. 


이해와 존중이란 두 단어는 쉽게 들리면서도 굉장히 어려운 삶의 태도이다. 누군가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은 죽을 때까지 삶의 과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나와 다르다 하여 무조건 밀어내고 배격하는 것은 관계로부터 멀어지겠다는 시위 아닌 시위가 아닐까. 


일단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주는 일만큼 멋진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요즘 들어 tv 속 공익 캠페인을 보면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많이 보게 된다. 마치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나올 법한 쉬운 내용인데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변해도 회자가 되는 것을 보면 이해와 존중은 여전히 어려운 숙제인가 보다.


글을 쓰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고 조금은 더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이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고 오늘보다 내일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모두가 꿈꾸는 것이 아닐까? 


내가 소중한 사람이듯 상대도 소중한 사람이다. 상대가 소중한 사람이듯 나 또한 소중한 사람이다. 너와 나 둘 다 놓칠 수 없는 귀한 사람들이다. 잘 살아내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은 너와 내가 함께 웃고 울어줄 때이다. 각자만의 슬픔과 고통을 이해해 주고 기쁜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해 주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나는 오늘도 글을 쓰며 사랑 하나를 더 했다. 부러운 마음 미운 마음을 한 꺼풀 걷어내고 진실한 나와 마주하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렸다. 온전히 나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진실한 마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면, 그 두드림에 화답할 누군가가 문을 열어줄 것이다.


이해와 존중은 어쩌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살아내고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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