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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달팽이 Mar 05. 2024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아이

"엄마는 힘들 때 어떻게 해?" 자기 위해 이불 위에 누워 있는데 첫째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힘들 때 엄마가 좋아하는 걸 하지. 사우나에 가거나 음악 들으며 걷기도 하고 책도 보고 그러지." 그러자 아이가 흐느껴 울었다. 당황한 나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지만 아이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 나는 아이의 등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토닥여주었다. 아이는 가슴이 답답하다 했다. 무엇 때문에 힘이 드냐고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고 했다. 아마도 아침에 있던 일 때문인 것 같았다. 이 날은 일요일이었고 아이가 친구와 약속을 하고 놀러 나가기로 했다. 아이는 신이 나 옷을 입었다. 그때 남편이 아이에게 옷 속에 런닝을 입었냐고 물었다. 아이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남편은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속에 내복을 입어라, 바지 내복도 입어라, 점퍼가 얇으니 다른 걸 입으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이 더 잔소리를 하기 전에 옷 위에 카디건을 입혀 주었다. 그리고 그 위에 점퍼를 입혔다. 아이는 내복을 입고 그 위에 옷을 입고 또 카디건을 입은 후 점퍼를 걸쳤다. 남편은 어제 바람이 불고 추웠기 때문이었는지 아이의 옷 상태에 신경을 썼다. 아이는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바뀌었다며 30분 일찍 집을 나섰다.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보기 위해 아이와 함께 밖을 나왔다. 아이는 숨이 막혀서 30분 일찍 만나기로 했다고 말한 거라고 했다. 집 밖을 나서보니 어제보다 춥지 않았고 초봄 날씨 같았다. 오전이라 약간 기온이 차게 느껴졌지만 오후가 됐을 땐 점퍼의 지퍼를 열고 다닐 정도로 기온이 따뜻해졌다. 겨울 점퍼라 두껍기도 했다. 아이의 건강을 염려하는 남편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아이에게 의사를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하는 말은 내가 들어도 가슴이 답답했다. 아이는 더워서 점퍼를 벗고 다녔다 했다. 아빠의 말에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서있던 아이를 보니 왜 아이가 이런 마음의 짐을 지고 있어야 하는지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남편의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면도 장점이지만 때로는 그 말이 너무 냉정하고 차갑게 들린다. '밖이 추우니 옷을 따뜻하게 입었으면 좋겠어. 속에 내복을 입고 나가면 어떨까?'이렇게 말해줄 수도 있었는데, 남편의 말은 잔소리를 넘어 강요처럼 들렸다. 가끔은 나도 남편의 말과 말투에 할 말을 잃고 만다. 아무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란다.


아이는 그날 이후 밤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의 마음에 가만히 곁에 있어주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밤에 흐느껴 울던 아이를 보며 어린아이처럼 울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자격증 협회의 모임이 있던 날, 나는 몇 주 전부터 남편에게 모임 날짜를 말해주었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들을 봐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며칠 전부터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사히 모임에 다녀올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모임 당일이 되자 남편은 아침 일찍 집을 나가 나갈 시간이 다 돼서야 돌아왔다. 전화로 언제 들어오냐고 몇 번이고 물었지만 정확히 언제 도착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첫째와 둘째는 자신이 볼 테니 어린 셋째를 데리고 가라 했다. 나는 오늘 하루만 봐달라고 얘기했지만 남편은 들어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친정에 아이들을 맡기고 다녀오겠다 하고 셋째의 감기약을 가방에 챙겼다. 그럼에도 남편은 셋째만 데려가라 했고, 나는 그럴 수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혼자 집 밖을 나왔다.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약을 갖고 오라 했다. 시간이 많지 으니 집에 있는 약을 먹이라 했지만 집에 놓고 가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곤 할머니집에 가겠다며 우는 첫째 아이도 데리고 가라 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집에 약을 놓고 첫째 아이를 친정에 데려다준 후 모임장소로 갔다.


아침부터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었기 때문일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지하철 의자에 앉아 숨을 죽이며 흐느껴 울었다. 눈물이 마스크를 적셨다. 모임 장소에 도착해 아무 일 없는 듯 자리에 앉았지만, 나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버렸다.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그때 협회의 소장님이 나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주셨다. 불안했던 내 마음을 토닥여주셨다. 모임 시간에 늦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주셨다. 나는 우는 내게 소장님이 따뜻하게 쓰다듬어주셨던 것처럼 이불에 누워 흐느껴 우는 아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 마음에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마음에 있는 응어리를 풀어주지 않으면 마음이 자라지 못해 아이 마음속 아이가 웅크리게 되어 아이의 성장과 독립에 걸림돌이 될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아이를 쓰다듬어 주면서 소장님이 나를 쓰다듬어주셨던 그때를 떠올렸다. 마치 우는 아이를 안아 주신 것 같았다. 내 안에 자라지 못한 아이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었지만 여전히 통제를 받는 것 같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당연히 아이들 중심으로 생활이 돌아가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지만, 남편이 나의 부모가 되어 나의 생활을 제한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에게 허용의 기준을 두고 활동 반경을 정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면 나의 어린 시절엔 부모님의 구체적인 제한이 거의 없었다. 부모님의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자유로이 외출할 수 있었다. 주말이면 원하는 곳에 혼자 혹은 친구와 함께 갈 수 있었다. 특별히 부모님이 어떤 관심을 갖고 있고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거의 묻지 않으셨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남편은 나의 의견을 묻지 않고 역할에 한정 지어 나를 대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 겪지 않았던 통제를 결혼생활을 하며 경험하게 되었다. 아이가 아빠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또한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기 전 걱정을 하는 어린아이처럼 전전긍긍했다. 아이들을 두고 홀로 외출해야 할 때 더욱 남편에게 당당하게 요구하기가 어려웠다. 당당해지자 마음을 먹어야 용기 내어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부모로서 어린아이인 모습으로 겁을 먹은 채 있을 수 없었다. 아이의 마음을 토닥여 주면서 아이가 스스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했다. 최대한 아이의 마음에 공감을 해주고 아이의 욕구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모든 것을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해내도록 지켜봐 주었다. 아이는 부모의 지지와 응원, 사랑을 먹고 쑥쑥 자란다. 남편과의 소통, 아이와 아빠 사이의 소통이 숙제처럼 남아있지만,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이니기 때문에 꾸준히 관계 회복과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이는 울음이 터지기 직전 "엄마 미안해"라고 말했다. 놀란 마음에 아이에게 "왜?"라고 물었다. 아이는 "울어서"라고 말했다. 아이가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아이를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모를 향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있었다. 부모님이 힘들고 속상한 이유들이 나 때문인 것 같아 미안했다. 그 마음이 남편에게로 이어졌다. 남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다 내 탓인 것만 같다. 내가 남편에게 느끼는 마음처럼 남편 또한 부모님에 대한 여러 감정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마음속에도 격려받고 지지받고 싶은 어린아이가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지금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마음의 상처가 건드려져 그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를 '감정 전이'라 한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고안한 개념으로 과거의 상황에 느꼈던 특정한 혹은 날 때부터 무의식에 새겨진 정서를 현재의 다른 대상에서 다시 체험하는 것이다. 그 당시에 느꼈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고통을 받을 때 다른 사람의 탓으로 감정이 전이된다. 하지만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돌보지 않고 살피지 않는다면 마음의 고통은 계속 반복이 되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힘든 이유는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이제는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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