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보풀

01

by 조연지

교수는 오래 전부터 종이의 무게에 짓눌려 서서히 양 어깨가 앞으로 돌출되고 있었다. 정말로. 종이더미들은 그에게 더 많은 담배를 피우도록 했고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으며 한 번은 수업 도중에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평생 약간의 저혈압이 있었는데 그날은 특히 땀을 많이 흘렸다. 담배를 사러 들른 편의점 앞에서 넘어진 할머니를 도와드리다가 수업에 지각할 뻔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옆에는 부축하는 이가 있었다. 그는 할머니의 며느리거나 딸로 보이는 크지 않은 키의 중년 여성으로 함께 근방의 병원에 다녀가는 길인 것 같았다. 할머니와 비슷한 키에다 무게는 덜 나가 보이는 그에게 부축은 쉬운 일이 아닌 듯 했다. 교수는 자신의 호리한 몸을 생각하지 않고 몸 곳곳에 피멍이 크게 든 할머니를 돕겠다고 나섰다. 그리하여 수업을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실려간 것이다.

20여 년 동안 수업에 늦은 적 없었지만 아침 수업을 좋아하진 않았다. 교수의 생에 전례없는 지각이었고 처음엔 시간에 봉변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몸이 조금만 젊었어도. 응급실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저혈압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갑상선암을 발견해 방학 동안 날짜를 잡아 수술을 했다.

그리된 것은 늙음 때문이었을까.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가고 세월을 지나는 사람들은 모두 늙는다. 그것은 교수의 신체능력 저하 때문도 쉽게 가여운 마음이 드는 탓도 아니었다. 피멍이 들만큼 보행이 어려운 사람에게 부축해 줄 사람이 없거나 이동수단이 어려운 것이 문제였다. 교수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진 못했으나 어머니께 얘기를 전해듣곤 했다. 대도시 한복판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 않고 노쇄한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시골 마을의 요양원이나 보호센터에 들어가 비슷비슷한 하루를 보낸다.



그는 죽기 전에 한 권쯤 따뜻한 이야기로만 채운 글을 쓰고 싶었다. 오랫동안 쓰지 못했고 자신이 쓸 수 없는 것을 동경했다. 그는 언젠가 여행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모작한 적이 있는데 자신이 따라 그린 그림은 호퍼의 그림보다 젖은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때 가능성을 발견했다. 자신 안에 남은 따뜻함은 종이 위의 여러 색으로 나타났다. 그는 그동안 비관적인 자신을 변화시키려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그의 어린 시절은 점차 멀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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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용서받은 몸이란다."

세례를 받은 날 그는 원죄를 용서받았다. 선악과를 따먹은 것에 대한 인류의 모든 죄. 그는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다니며 신앙을 품었다. 작고 흰 새 같던 그에겐 신앙이라는 알이 있었다. 그는 새 중에서도 자신의 새장으로 돌아오는 길을 알고 있는 똑똑한 새였다.

새장은 세상을 아름답게 굴절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왜소한 체격이었음에도 큰 병을 앓거나 질환을 자주 앓지 않았다. 아름다운 새장이 그를 보호하기 때문이었다. 교수는 신앙 덕분에 건강했다고 지금도 가끔은 생각했다. 그렇다고 현재를 부정하진 않았다. 언젠가 새장 밖에서 큰 병을 앓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용서받은 몸은 곧 죄인이었던 몸이다. 용서받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루듯 교수는 먼 곳에서 서서히 죽어갔다. 그는 독일에서 보낸 삶을 차갑고 어두운 항아리에 비유했다. 그의 몸은 왜소했고 목소리는 작았다. 사람들은 거지를 보듯 그를 바라봤고 대화하려 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도 그 밖에서도 철학책을 읽었다. 그는 구부러진 모양으로 점점 더 작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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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다시 해석하면서 온몸이 틀어지고 열이 났다. 독일의 차가운 골방에서 니체를 한참 읽었다. 그것은 교수에게 새 빛이었다. 그는 그 빛으로 성경을 새로 빚었다. 동시에 그것이 교수에게도 빛을 불어 넣었다. 거울처럼. 교수는 그것으로 졸업논문을 써 나갔다.

교수는 주로 번역서를 냈다. 그는 이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무거나가 아닌 무언가. 자신을 위하는 척하는 것이 아닌 진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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