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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 보풀이 제멋대로 달린 교수의 니트를 보고 그를 무신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안경을 제대로 닦지 않았고 그 탓에 어떤 막 뒤에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가 허공에 대고 자신 스스로와 말하는 것처럼 보였달까. 학기 초, 문은 그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썼다. 식견이 짧은 자신을 탓하면서.
첫인상과 달리 교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는 니체 철학을 말하면서도 성경을 유의미하게 보았다. 신앙을 강조하진 않았지만 신앙을 실추시키는 질문을 싫어했다. 또 이것은 유의미하고 저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을 싫어했다.
"니체가 망치를 든 철학자라고 해서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지만 전혀 아닙니다."
그는 무언가 강조할 때 눈을 세게 감았다 뜨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수업을 듣고 있으면 그가 외줄을 타는 광대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였다. 한 번도 운동을 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축 처진 몸으로 열변을 토해내는 모습이 열정적으로 위태로웠다. 전쟁에 참여한 적은 없지만 피폭을 당한 사람 같았다. 그는 쑥대밭이 된 머릿속에서 한줌 긁어 모은 사금을 문에게 전하려고 했다. 온몸으로 빛을 전하고 있었다. 한차례 전송이 끝나면 몹시 피곤하하며 자리에 풀썩 앉았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문은 니체의 말을 이렇게 해석했다. 신이 부활하려면 필수불가결한 조건을 가진 우리가 필요하다고. 나약한 우리가. 나약함을 인정할 때 '우리'가 된다. 무신론자인 문은 그렇게 생각했다.
교수의 수업이 침참되던 시기가 있었다.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그는 자주 의자에 늘어져 있었고 말을 끝맺지 못했다. 공주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의 말을 들어 보니 그럴 만 했다. 교수의 딸이 암 투병을 하다 죽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네들이 오래오래 잘 살던 집에서 갑자기 나가서 그렇다고 덧붙였다. 그 집이 가족을 지켜주고 있던 거라고. 문은 할머니의 근거 없는 믿음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교수는 아주 천천히 회복해가는 듯 보였다. 쉬는 시간에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학생들에게 너무 많이 피우지 말라고 농담처럼 흘렸을 때, 문은 교수가 회복해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천국과 지옥을 부정한다. 그렇게 하면 삶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교수는 딸이 죽어서 어디로도 가지 않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천천히 걱정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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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다시 교수를 찾아간 건 그가 문에게 남은 유일한 스승이기 때문이었다. 함께 글을 쓰던 친구나 선배들은 졸업 후 다른 길로 접어들거나 저마다의 사정으로 바빴다. 교수만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글을 보여주는 것만이 그를 찾은 이유는 아니었다. 문은 자주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다. 언제 사라져버렸는지 모를 양말 한 짝처럼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는 삶을 중단하고 싶었다.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미래로 나아가려 발걸음을 떼면 청소기 같은 과거가 문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빨려가면 흐리고 먼지 가득한 그곳이 이상하게 아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