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보풀

04

by 조연지

안식년 동안 어머니와 함께할 마음으로 공주에 내려왔다. 무릎이 안 좋은 어머니는 먼 걸음을 하는 것이 무리인데도 일하는 것을 고집했다. 노인일자리가 잘 돼 있다면서 교대로 유적지를 지키는 일이나 공원의 쓰레기를 주워 모으는 일 등을 계속했다. 나이 치고는 정정한 편이지만 사고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나보다 걷기 힘든 분들도 밖에 나와 일하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게 바로 문제예요. 어머니는 그러니? 하고는 곧장 말을 돌렸다. 그중에서도 도로변에 꽃을 심는 일이 가장 좋았다고. 곧 겨울이 와서 죽을 텐데도 심더라. 자꾸 심는 거야, 나 같은 사람들은 그냥 할 게 없으니까 하는 거지.

"절에도 잘 못 나가시면서 어디 놀러나 다니시지 왜 일을 계속하세요?"

여러 차례 다그쳐도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일을 해야 사람답게 살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불자로 개종했다. 그때부터 교수는 신실했던 믿음이 한순간에 바뀌듯이 어제와 오늘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영 고꾸라져 있는 법은 없는 것이다. 사람답게 사는 것.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 못 배우고 가난하고 나이가 들어도 모든 삶은 존중받아야 한다. 교수는 어머니를 내버려 두기로 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조금씩 내버려 둘 것이 늘어갔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도 남아있었다. 그 덕에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머니와 단풍 구경을 하러 나왔다가 청국장 집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산자락 밑에도 국숫집이며 전집, 한정식집이 늘어서 있었는데 어머니는 늘 가던 식당을 고수했다. 단체로 단풍을 보러 왔다가 버스에 줄지어 올라타는 사람들이 보였다. 교수는 너무 늦진 않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음 주면 잎이 다 떨어질 터였다.

그는 어머니가 화장실에 간 사이 풀빵 파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동그란 철판기계에 걸쭉한 미강색 반죽이 들어차고 있었다.

"많이 기다려야 하나요?"

"금방 돼유, 금방 돼. 잠깐만 기다리셔."

불판 앞에 쪼그려 앉은 아주머니가 틀 안에 앙금을 넣으며 답했다. 풀빵은 어머니보다는 교수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어머니는 교수가 어릴 적 풀빵의 이름을 몰라 이리저리 설명하는 모습을 기억하고 겨울이 오면 매번 그 일화를 되감아 설명했다. 먹고 싶어 하는 거 이름을 모르니 어찌나 애가 타던지. 꼬챙이로 막 쑤시고 돌린대. 그걸 들으면 붕어빵은 아닌데… 한참 생각해도 모르겠더라. 나중에 다시 시장에 가고 나서야 엄마 저거, 저거야, 하는데 나 혼자 웃자니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잖아. 어머니는 호호 웃으며 어린 교수의 몸짓을 시늉했다. 그래서 풀빵은 어머니도 좋아하는 음식이 됐다. 교수는 하얀 봉지를 받아 들고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꽃무늬 조끼를 입은 어머니 뒷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교수가 불렀다.

"얘, 어딜 갔다 오냐. 나 버리고 간 줄 알았다."

성을 내는 어머니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화장실 줄이 길어 마음 놓고 다녀온 것인데 놀란 어머니를 보자 교수는 미안해졌다. 어머니는 혼자가 된 이후로 화가 부쩍 늘었다. 스스로를 짐처럼 여기는 것 같기도 했다.

"풀빵 조금만 드셔요, 밥맛 없을라."

어머니는 조수석에 흰 봉투를 들고 앉아 말랑말랑한 풀빵을 손으로 집어 후후 불어 먹었다. 오물오물 먹는 모습이 아이 같았다.



식당 주인은 교수와 어머니를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자리에 앉은 어머니는 수저를 만지작거리다 밥과 국이 나오기도 전에 반찬을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마저도 몇 차례 떨어트려 먹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이거 봐라, 자꾸 흘리는데 부끄럽지 않은 곳으로 오길 잘했지. 네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나열해 봐라. 난 여기가 좋다."

교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어머니 밥그릇 위로 반찬을 집어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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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에서 잘 때면 악몽을 꾸었다. 독일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시작됐는데 그가 젊은 날에 꾼 가장 끔찍한 꿈은 자고 일어나니 머리카락이 빠져 한쪽이 휑해진 꿈이었다. 거울 속 얼굴의 좌우가 확연히 달랐다. 독일에서 보낸 몇 년은 생의 아주 짧은 시기였으나 그가 스스로 추한 쪽에 해당되는지 계속해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세상이 정해 놓은 미와 추가 사람을 기이하게 깎아놓은 것 같았다.

한 번은 자다가 굴러 서랍장에 이마를 찧었다. 어머니는 교수를 일으켜 좋은 데 가자고 말했다. 병 낫게 얼른 가자. 택시에서 내려 좁은 오르막을 올라 도착한 곳엔 작은 절이 있었다. 교수는 어머니의 개종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어머니는 불전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고 약을 지어먹으면 병이 싹 낫는다고 했다. 교수는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새장은 부서지지 않았으면 했다.

잘 됐다. 이게 다 부처님, 보살님 덕이다. 그 덕에 건강해지고 교수도 된 게야. 어느 날부터 악몽을 꾸지 않는 교수에게 어머니가 말했다. 교수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아는 것을 나누고 가르친 덕이라고 생각했다. 교수가 된 것이 먼저고 그래서 아프지 않게 된 것이다. 교수는 어머니의 말을 가만히 듣는 것이 그와 함께할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라고 터득한 지 오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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