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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나 Aug 17. 2022

나란한 초상

1. 선희

   문지방에 앉지 마라, 복 나간다.

   선희는 문임의 말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는 다정하지 않았다. 문임의 목소리는 낮으면서도 날카로웠으며 조금 딱딱하고 피곤이 묻어 있었다. 선희는 문임이 아닌 만복에게 다정함을 배웠다. 만복은 선희가 먹고 싶어 하는 것과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사다 줬다. 만복의 넉넉한 성품 덕분인지 선희는 갖지 못하는 게 있어도 떼를 쓰지 않았다. 선희는 학창 시절에 옷을 기워 입거나 다 떨어진 신발을 신지 않았으며 노트와 학용품이 부족하지 않았다.

   여섯 남매 중 문임의 얼굴을 가장 닮은 건 선희였다. 선희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사진 속 둥글넓적한 제 얼굴을 볼 때마다 문임을 생각했다. 자신에게 고생만 안겨준 문임을 생각했다. 문임을 생각하면 선희는 속이 상했다.


   선희는 일을 하는 도중에도 문임의 집에 들러 문임을 차에 태우고 다녔다. 문임의 병원에 가거나 성묘하러 갈 때 선희가 문임을 데리고 갔다. 선희는 그것이 자신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대문 앞에 차를 대 놓고 문임을 기다리던 선희는 무릎이 약한 문임이 한평생 계단 많은 집에 사는 것을 걱정했다. 문임이 더 나이 들면 이 계단을 어떻게 오르내리나 생각하다가 문임은 이곳을 떠나 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문임은 장독대에서 간장을 퍼 가지고 내려오다가 크게 넘어졌다. 간장은 한쪽이 조금 더 높게 설계된 마당 바닥을 타고 물구멍으로 흘러갔다. 문임은 신발을 벗고 들어와 다리며 팔에 묻은 간장을 씻어냈으며 부어오른 무릎을 스스로 치료했다. 무릎은 날이 갈수록 부어올랐다. 그는 찜질팩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무릎에 올려보기도 하고 차갑게 얼려 무릎에 대놓기도 했다. 통증이 심해지자 병원을 찾았다. 물이 찬 무릎에 염증이 생긴 것이었다.

   문임은 활막을 치료하는 수술을 했다. 무릎이 부어올랐을 때 바로 병원에 갔으면 수술 없이 건강해질 수 있었다. 문임은 병원에 가는 걸 싫어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때가 오지 않으면 병원을 찾지 않았다.


   왜 병을 키워.

   선희는 문임을 생각하며 수지에게 말했다. 수지는 링거 맞은 부분을 만지작거렸다.

   선희는 어지럽고 기운이 없다는 수지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가정의학과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는 소견이었다. 이어 차를 타고 15분 거리에 있는 소아과를 방문했는데 의사는 영양실조 같다고 이야기했다. 선희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멍하게 앉아 있는 수지가 안쓰러운 것보다 자신의 도리를 다 못했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선희가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아둔 밑반찬은 줄지 않았다. 선희가 집에 없는 시간 동안 수지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선희는 일을 하고 일을 끝내고 또 다른 일을 하러 달려갔다. 수지는 선희가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걱정했다. 하지만 자신을 학원에 차로 태워 데려다주거나 친구들과 놀러 갈 때 선희의 차를 타는 걸 좋아했다. 어떨 땐 집보다 차가 시원하거나 따듯해서 집에 들어가기 싫기도 했다.

   수지는 잠을 자도 잠이 왔다. 어느 순간 심심함도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았고 이렇게 계속 잠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프면 참지 말고 말하고.

   응.

   수지는 선희를 빼닮았다. 선희는 수지가 그 얼굴을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선희는 늘 그것을 잊지 않는다. 수지가 선희에게 학교에 오지 말라고 말한 것도. 정확히 말하면 안 와도 된다고 말했다. 선희는 아이를 낳은 뒤로 자신의 모습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말을 듣고 며칠은 시무룩해 있었다.




   만복의 차 사고로 집이 기울자 선희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범준과 미양이 아직 대학에 들어가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했을 때에 문임과 여섯 남매는 만복의 장례를 치렀다. 병원 안에 장례식장이 막 생길 무렵이었다. 문임은 어떻게 사람 살리는 곳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냐고 했지만 선희는 만복의 시신을 멀리 옮기지 않아도 된다며 문임을 설득했다. 너무 오래 이곳에 머물게 하지 말자고.

   선희는 아직 다 못 자란 동생들을 안쓰럽게 여겼다. 그는 대학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했는데 안전관리공단에 취직을 하고 나서 버는 돈을 문임에게 가져다주었다. 문임은 그 돈을 아직 못 자란 두 자식에게 썼다. 선희는 그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문임도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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