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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n 11. 2021

뚝배기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힘든 마음을 봉지에 담아 버릴 수 있다면


  그날 저녁은 전날 끓여 둔 된장찌개를 먹을 참이었다.


  두부, 호박, 만가닥 버섯을 넣고 뭉근하게 끓인 된장찌개가 주는 구수한 냄새가 당겨, 설거지를 얼추 마무리하고 뚝배기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뚝배기 안엔 된장찌개가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바싹 타들어가 말라비틀어진 두부와 호박이 엉겨 새까맣게 눌어붙어있었다. 그 와중에도 불이 나지 않았다고, 정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남편을 불렀더니, 남편이 멋쩍게 다가와 먼저 미안해했다.


 "불을 켜고는 깜빡한 거야.. 미안해..."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연은 이랬다.

  출근을 한 나는, 혹여나 더운 날씨에 찌개가 상할까 싶어, 남편에게 데워 달라 부탁했고, 남편은 그러마 했다. 늘 하던 대로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뚝배기를 올려놓고, 잠시 방에 들어가 쉬었단다. 서서히, 하지만 꾸준히 뜨거워지는 뚝배기는 부글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남편은 그만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타들어 가는 냄새라도 났으면 좋았으련만, 하필이면 그날 환기를 시킨다며 활짝 열어놓은 창문 덕분에(?) 냄새는 모두 밖으로 빠져나가버렸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냄새가 나는 걸 느꼈단다. 불어오는 바람에 날아가지 못한 탄 냄새 쪼가리가 남아 남편의 코끝에 닿은 것이다. 그제야, 아차, 싶어 부엌으로 갔지만 이미 뚝배기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상태였다고. 급하게 불을 끄고, 열어보니 국물은 쪼그라들고, 건더기만 바닥에 진득하게 눌어붙어있었다고.


  당장 고무장갑을 끼고, 철수세미를 동원해 박박 문질러 보았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절대 떨어지지 않을 된장찌개의 잔해를 보며 생각했다. 버리자, 버리자고. 남편에게 미안해하지 말라며, 좋은 뚝배기 또 하나 사면 된다고 말하며 검은 비닐봉지를 꺼냈다.


  꼬박 4년을 쓴 뚝배기였다. 소꿉장난처럼 매일 같이 살림살이를 고르는 재미에 빠졌던 때, 이마트에 가서 계란찜용, 된장찌개용 뚝배기를 하나씩 들이며 이제 우리도 식당처럼 제대로 만들어 먹어보자며 신나서 구매했던 것이었다. 계란찜용은 진즉 깨져 버렸지만, 요놈은 크기도 적당하고 튼튼해서 꽤 마음에 들어하던 녀석이었다. 된장찌개를 원체 좋아하는 나 때문에 매일 같이 된장, 두부, 호박, 버섯, 그리고 알싸한 마늘 따위를 품어야 했던 녀석.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고작 뚝배기 하나 버리는 것인데도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괜스레 서글퍼졌다. 하지만, 마음을 들여다볼 겨를 없이 '엄마'를 외쳐대는 딸내미와 색칠놀이를 하다, 간식을 먹었다. 남편과 같이 마루에 밥상을 펴고 커피 한 잔 마시며 시시껄렁한 프로그램 얘기를 하다가, '이제 잘 시간'이 되어 딸을 데리고 나는 방으로, 남편은 서재로 들어갔다. '잘 자',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마. 피곤하니까'라고 늘 하던 말을 건네며 방문을 닫았고, 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까, 출근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버스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밖을 바라보는데 뚝배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것을 버리며 느꼈던 내 감정도 함께.


  서글픔, 미안함, 그리고 속상함..?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안에서 뒤섞여 가고 있었다. 섞인 감정들은 슬픔으로 변해 나를 물들이고 있었다.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처럼, 그렇게 조금씩 파랗게. 생각해야만 했다. 나를 서글프게 한 것은, 미안하게 한 것은, 속상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떠올렸다. 뚝배기 속 눌어붙은 두부, 새까맣게 변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국물을.

  그려보았다. 뚝배기가 끓고 있는 동안 방 안에서 혼자 있었을 남편을.

  상상해보았다. 이상한 냄새에 '아차' 싶어 헐레벌떡 뛰어나온 남편의 마음을.

  짐작해보았다. 그 순간, 남편의 감정을, 상황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를 서글프게 만든 존재는. 타버린 뚝배기가 아니라, 뚝배기를 타버리게 만든 남편이었다는 것을.



  

남편은 오래전부터 나에게 뚝배기 같은 남자였다.

  불안과, 걱정과, 고민이 많은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 언제나처럼 같은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온 갖가지 부정적인 일들도 '바꿔 생각해보면~'이라는 말로 생각을 전환해주는 사람. 뚝배기처럼 뭉근하게 끓어오르는 사람. 내면이 단단하게 다져진 사람.


  그런 점이 좋았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와 달리 언제나 우직하게 자신이 믿는 것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

오랜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으며 가정을 꾸렸다. 퇴근하면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 한 잔 기울이며 서로의 상사를 욕해주기도 하며, 가끔은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다가, 화해를 위해 산책하다 깊은 대화도 하는, 그런 멋들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4년 가까이 되는 결혼 생활은 나에게 행복감만을 주었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남편은 개인적인 일로 근 2년 정도 마음고생을 했다. 하필이면 그때, 임신과 출산이 겹쳤던 난 남편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내가 해준 것은 치킨 한 마리와 맥주 4캔을 사다 주는 게, 회와 소주를 주문해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지만, 2시간마다 한 번 씩 울어대는 아기를 돌보는데 급급해, 시큰한 손목과 무릎을 참아가며 집안일을 하는 게 버거워 듣지 못했다. 남편은 오롯이 혼자가 되는 자정 너머의 시간엔 불규칙적으로 쿵쾅대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불면에 시달렸다. 그렇게 2년, 730일, 17520시간 동안 그는 함께 있었지만 혼자였다.


  그날의 뚝배기에 눌어붙은 것은, 바로 남편의 감정이었다.

  만약, 그가 힘들었을 2년 간 혼자 끙끙 앓지 않았다면, 내가 틈틈이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토닥여주었다면, 사라졌을 감정이 눌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너무 진득해서, 도저히 떨어지지 않을 것들이 뒤엉켜 꾸덕꾸덕 묻어 있었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이 그걸 알아채고 말았다.

  그래서 난, 뒤늦게 서글퍼졌고, 미안했고, 속이 상했다.




  지금 남편이 많이 힘들다.

  하루가 시작되어도 끝이라 느끼며,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다. 하고 싶지만 하고 싶지 않고, 모든 게 다 귀찮으면서, 쉬고 싶으면서도 뭔가를 해야 하는 생각에 압박을 느낀다. 어린이집 등원 후, 갑자기 고요해지는 집안에서 마음 둘 곳 없어 컴퓨터를 켜고, 무의미한 게임을 플레이한다. 수업이 끝난 나에게 '어서 오라'라고 말하지만, 일 때문에 늦는다고 하면 'ㅇㅇ 알았어'라고 답하곤 아이를 돌본다. 삶에 기대도, 기쁨도, 반쯤 사라진 느낌이다. 마음도 처방할 수 있다면, 그의 마음은 알약 수십 개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가 오래도록 그래 왔음을, 웃고 있지만 사실은 속으로 많이 울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이제야 마음으로 와닿았다. 아이를 돌보느라 소중한 사람의 마음을 놓쳤다. 못난 아내임이 틀림없다.


  어떤 감정은 너무도 캐캐 묵어서 도저히 수세미로는 닦을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런 감정들을 애써 긁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힘이 든다. 그럴 땐, 차라리 그것들을 그러모아 그냥 버려야 한다. 내가 뚝배기를 봉지에 담아 버린 것처럼. 남편의 마음이 뚝배기에 들러붙은 거라면, 남편의 힘든 마음도 잘 분리수거해서 버려주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지치고 힘들다는 이유로 미루던, 아이가 아프다는 이유로 거부하던, 코로나 때문에 무섭다고 회피하던 잠깐의 산책과 아이 재운 후에 함께 보내는 시간에 담아, 남편의 오래된, 그를 갉아먹는 힘든 감정들을 버려주고 싶어 졌다.


  퇴근하자마자 "애는 잘 놀았대?"라고 묻기 전에, "남편, 오늘은 어땠어?"라고 묻고, "오는 길에 좋아하는 라테 한 잔 사 왔어"라며 챙겨주는 사소함에 담아, 남편의 깊은 우울을 버려주고 싶어 졌다.


  나는 못난 아내임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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