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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Oct 28. 2021

약손

아프다. 며칠 전부터 목이 칼칼하더니,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36.8도. 열이 나지 않음에 안도하며 출근해 일을 하는데 이제는 머리까지 아파온다. 마치 물을 잔뜩 먹은 솜이불처럼 무거워진 머리는 목을 짓누르고 목은 다시 어깨를, 어깨는 온몸을 누른다. 쌍화탕을 먹어도 영 신통치 않아 짐을 싸 회사를 나선다. 종일 나를 기다렸을 딸내미 손을 잡고 집에 가는데 녀석은 오늘도 놀이터에서 놀지 못한다며 엄마 밉다며 저리 가라 한다. 어르고 달래며 집에 도착해 맛있는 초콜릿 과자 몇 봉 손에 쥐어주고 침대에 누워 쉬는데, 까무룩 잠이 든다.


꿈속에서 나의 엄마는 나를 보며 걱정한다. 많이 아프니, 열은 없네, 푹 쉬어 집은 걱정하지 말고, 한다. 나는 엄마, 엄마 하며 엄마 손을 잡아본다. 그러면 엄마의 손은 어느새 따뜻한 손수건 하나 쥔 채 내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엄마, 엄마, 하며 눈을 뜨니 딸내미가 내 곁에서 가제 손수건 하나 들고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고 있다. 엄마, 이젠 괜찮을 거야, 하며 꼭 쥔 손수건으로 힘껏 나를 돌봐주고 있다. 어려서부터 아픈 모습만 보인 엄마가 행여나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이 내 곁을 지키게 만들었나. 헤질대로 헤져버린 제 이불 들고 와 나를 덮어주더니 엄마, 아프지 마, 한다.


한참을 누워있다 불현듯 기운이 난다. 그래, 이제 일어나야지, 집안일해야지. 잠깐 누워있던 게 큰 힘이 되어 머리가 잠시나마 맑아진다.


어릴 적 자주 아팠던 내 옆엔 엄마가 있었고 엄마의 손이 있었다. 애 엄마가 된 지금도 여전히 자주 아픈 내 곁엔, 벌써 이만큼 커서 나를 간호하는 딸이 있고, 나를 걱정하며 어루만지는 딸의 약손이 있다.


어쩐지 덜 아픈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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