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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Nov 30. 2021

사는 게 바빠서

놓치고 사는 것들

읽고 싶은 책들은

책장 옆에 계단처럼 쌓여가는데


뒷자리에 앉는 동료와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굳어버린 손가락 풀어

새하얀 도화지에

손그림도 손글씨도 그리고 싶은데


사는 게 바빠서

살아가는 게 바빠서


채우지 못하고

흘러가는 시간들을

끌어당겨 잡아 놓고 싶은데


답답한 마음은

마음속에만 메아리치다

사라지는데




결혼 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결혼을 하고, 아니 정확히는 '아이'를 기르면서는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하며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까지 꼼꼼히 챙기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었고, 품이 많이 들었다. 그 옛날 직장에 다니며 고3 딸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교복 블라우스 한 번 꾸깃하게 둔 적 없는 엄마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를, 직접 해 보니까 더 알게 됐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된다고 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여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이 맞는 남편과는 꽤나 즐겁게 신혼을 보내곤 했다. 하지만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순간, 하고 싶은 것들의 절반 이상은 뚝 떼어 내어 마음속 깊은 곳에 잘 간직해 두어야 된다는 것을 직접 부딪히고 깨져보며 깨달았다. 그 모든 것들은 아이가 잠드는 깊은 밤, 새벽에나 가능한데 체력이 약한 나로서는 도통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이 들 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을 하지만 짬이 나지 않았다. 고작 글 한 편 쓰는 것인데도 아이가 옆에 있으면 백지 위에 커서만 깜빡거릴 뿐,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고, 큰 맘먹고 꺼낸 책엔 아이의 낙서가 군데군데 자리 잡았다. 결국,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는 일은 절반 정도는 포기하고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들을 지워나가며 살게 됐다.


사는 게 바빠서, 남들처럼만은 살고 싶은 마음은 자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우게끔 했다.


사는 게 바빠서,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씻고, 먹고, 자는 것 따위의 해야 하는 것들을 채우는 동안 하고 싶은 것들, 하면 좋은 것들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마음속 우울이 가득 차 휘휘 젓다보면 가라앉아있던 것들이 둥둥 떠오르곤 했다.


고지식하고, 어리숙하고, 바보 같아서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모른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욕심은 많아서 하나도 놓치지 못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참고 살아갈 것만 같다. 그저 언제 끝날지 모를 끝없는 반복 속에 이렇게 출근길에 잠시 짬을 내어 글이라도 써보면서 푸는 수밖엔.




photp : unsplash

by Sharon McCutc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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