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다 하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보며 살다 보니
입 속에 우물이 생겼다.
처음엔 얕게 찰랑이던 것이
지금은 깊어도 너무 깊어
끝을 가늠할 수 없어졌다.
낮에는 고요하던 우물은
밤이 되면 요동치며
나를 뒤 흔든다.
나는 저항하듯
받아들이듯
알 수 없는 마음으로
그 혼돈을 겪는다.
깨어서 하지 못한 말
자면서라도 하는 것처럼
쌓여서 뱉지 못한 말
자면서라도 토해내듯이
그러면 어느새 잠잠해진
우물은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내 안에 있다.
입 속에 검고 깊은 우물로, 있다.
최초의 이갈이에 대한 기억은 11살 때다. 언니와 한 방에서 잠드는 순간에 내가 이를 간다는 걸 느꼈다. 성인이 되어서는 잊고 살았다. 워낙 깊이 자는 편이라 몰랐던 내게 신혼 초 남편이 조심스레 깨우며 말했다. "너, 이를 너무 가는데?"라고. 뽀드득, 빠드득, 우드드득, 하는 소리가 너무 심해 이가 다 갈려 나갈 것 같아 깨웠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 후 몇 달을 고민하다 결국 70만 원짜리 스플린트*를 구입하고 착용하기로 했다. 그리고 5년 간 자면서 이를 갈진 않았지만 대신에 스플린트에 깊은 홈이 파였다. 우물 같은 깊고 깊은 홈이.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딸도 이를 갈기 시작했다. 새벽 두 세시 경이었을까. 모두 잠들고 나만 깨어있는 밤. 정적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뽀드득뽀드득 빠드득 빠드드득-
그 작은 이가 다 부러질 정도로 강하게, 거칠게, 분명히, 오래 갈던 녀석은 태평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녀석은 꾸준히, 오래 이를 갈았다. 먼저 번 소아과 원장님이 이갈이에 관심을 보이면 더 지속할 수 있으니 언급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 멈칫하고 말았다. 이를 갈면 턱관절과 어금니에 전해지는 아픔이 얼마나 큰 지 아는 나는, 이를 가는 녀석이 짠해 그저 머리카락만 쓰다듬어 주었다.
"도대체 원인이 뭘까요?"
5년 전 스플린트를 맞춰준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은 원인은 할 수 없으나 대부분이 스트레스,라고 했다. 그때 고개를 바로 끄덕였던 것은 예민하고 섬세하고, 소심하며, 불안이 많은 내겐 필연적인 증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은 고작 네 살. 새해 들어 다섯 살이 되었지만 늦은 10월 생이라 아직은 또래보다 작고 느린 '아이'었다. 그런데 녀석이 뽀드득, 빠드득, 빠드드득 갈아야만 하는, 갈아서라도 없애야만 하는 스트레스란게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씁쓸해졌다.
사랑한다는 말을 참 많이 하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사랑해, 좋아해, 네 곁에서 언제나 지켜줄 거야, 라는 오글거리는 말도 서슴지 않고 뱉었다. 그래서 녀석의 마음밭은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것들로 가득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어쩌면 내가 모르는 '힘듦'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래, 네 살의 인생도, 다섯 살의 인생도 스스로 느끼기에 고행의 길일 수 있다고.
그러니 아이의 마음을 쉽사리 재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다. 표현을 솔직하게 하되, 억압하지 않기로. 자유를 주되 지나친 제한을 덧대지 않기로. 새로운 환경에 부딪힐 때, 억지로 힘내라고, 다 잘하는 거라고 긍정을 강요하지 않기로. 아유 착하다, 같은 칭찬의 말로 아이를 옭아매지 않기로. 그래서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알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나처럼 입 속에 깊은 우물 간직한 채 살지 않고 맑은 시냇물 졸졸 흘려보내며 살 수 있도록.
*스플린트 : 이갈이를 심하게 하는 경우 이의 모양대로 맞춰 끼는 장치. 이 대신 이 장치를 갈게끔 유도해 이에 직접적으로 자극이 되는 행위를 최소화하게 한다.
사진 : Photo by Tom Barrett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