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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09. 2022

1년째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5시에 번쩍, 눈이 떠졌다. 잠시 더 눈을 붙일까 망설이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내가 일어나 꿈틀거리는 사이 어느새 딸은 내 베개에 얼굴을 묻고 곤히 자고 있다. 이미 뺏긴 자리를 비집고 들어갈 자신은 없어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와 가만히 서재로 들어온다. 


고요, 적막,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의 공기. 이 새벽의 공기가 참 좋다. 


사실 4년 동안 5시에 눈을 떠 출근을 했으니 몸이 기억할 만도 하다. 몸은 오늘이 쉬는 날인지 일하는 날인지 모르니까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게 맞긴 하다. 하지만 이제 5시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새벽 5시에 눈을 떠 서재로 들어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새벽은 아이가 잠든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엄마!'라는 부름 없이 오롯이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머릿속에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볼 수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훑어볼 수도, 가만히 아이패드에 그림을 그리며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오롯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오롯이 내 시간을 갖기 힘들다. 신생아 때보다야 훨씬 낫지만 그래도 놀아주고,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과정 모두가 내 손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아이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다시 잠드는 순간까지 매 순간 정신은 아이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하루 종일 아이와 지지고 볶고 난 후 내 시간을 좀 갖고 싶은데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워낙 저질체력이라 아이 재울 때 그냥 같이 뻗어버리는 통에 지금까지 다른 부부들처럼 아이를 재우고 제대로 영화 한 편 본 적이 없다. 


모든 것의 중심이 '아이'가 될수록 우울해졌다. 나는 왜 살지? 나는 왜 아이를 낳았지? 나는 뭘 위해 살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 때면 가끔 이상한 생각까지 떠올라 견디기 힘들어진 적도 많았다. 동네에 변변한 친구도 없거니와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성격도 아니기에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정말 나를 위한 시간이 간절히 필요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자 내게 시간이 주어졌다. 빠르면 4시, 혹은 5시에 일어나면 아무도 일어나지 않아 조용하고 한가로운, 그래서 온전히 세상에 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절로 힐링되는 기분까지 들었다. 게다가 이 시간은 웬만하게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윗집도, 앞집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아닌가. 발자국 소리 하나 울리지 않는 고요의 세상. 그 세상 속에서 혼자 맑은 정신으로 깨어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심지어 아주 예전부터 '아침형 인간'이어서 아침에 유난히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이 잘 됐다. 못다 쓴 브런치 글, 어디엔가 투고하고 싶었던 미완성 이야기들, 에버노트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케케묵은 옛날이야기들을 적다 보면 그제야 마음이 환해지며 평온해졌다. 가끔 글쓰기 싫을 때에는 아이패드를 꺼내 그림을 그리거나 일기를 썼다. 펜슬을 연결해 손글씨로 쓰다 보면 불안은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우울과 불안이 옅어질수록 새벽 시간이 참 좋았다. 9시에 잠들더라도 새벽 4시에 깨어 못다 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지, 하고 생각하니 그렇게 울적하지 않았다. 그리고 푹 잔 후 5시 즈음 일어나면 꼭 차 한 잔을 타 서재 책상에 앉았다. 그리곤 굳어버린 손가락을 풀곤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을 적어 내려가곤 했다. 왕복 5시간의 통근 거리도 나를 막을 수 없었다. 비록 30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꼭 일찍 일어나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일터로 나갔다. 그래야만 버티고 살 수 있었다. 


그렇게 1년째, 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나를 들여다보니 나에게는 두 권의 브런치 북과 여러 개의 발행 글이 생겼다. 그리고 보일 수 없는 굿노트 다이어리엔 나의 희망과 기대가 담겼다. 물론 가끔은 아주 길에 우울과 불안이 고스란히 적힌 적도 있지만. 새벽에 일어나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새벽에 일어난다.

모두가 있지만

사실은 아무도 없는 

그 평온한 시간을 누리기 위해서.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  



Photo by Ramiro Pianaros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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