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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09. 2022

아이패드 심폐소생중

2017년부터 지금까지 고생했어

일체형 키보드가 인식이 안되기 시작한 지 대략  .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서 끝까지 써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다. 아무래도 접촉 불량인 듯싶다. 17년도에 처음 썼을 때도 불안 불안하더니 결국 6년 만에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그래도 1년 남짓 잘 들고 다닌 녀석인 데다 브런치 북 두 개를 완성시킨 장본인인지라 마음이 유난히 안 좋다. 


내가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글을 써 오던 것을 아는 남편은 이김에 새로운 아이패드를 장만하라고 했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아직 용량도 충분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풍문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전업 작가이거나 프리랜서라면 내 몫의 기기에 아낌없이 투자를 하겠지만 아직은 그저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지망생'일뿐이니 무리한 투자를 받는 게 부담이다. 


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정든 물건을 쉬이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이다. 오래 쓰며 손 때가 탄 물건은 버리지 못해 언제나 해진 옷, 뜯어진 인형 따위를 지니고 살았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상자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과거'의 흔적에 행복해하는 사람인지라 곁에는 지극히 사소한, 하지만 나름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로 가득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주고받은 편지, 10년 전에 쓴 일기장, 그리고 아주 자잘한 낙서까지. 


아이패드도 그중 하나가 됐다. 디지털 기기에 완벽히 문외한이었던 내가 어쩔 수 없이 받아 쓰게 된 녀석이었다. 일을 하려면 꼭 필요했는데 마침 남편이 사놓고 잘 쓰지 않는 녀석이 있었다. 장비는 꼭 구색 맞춰 구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 덕에 일체형 키보드, 애플 펜슬, 케이스, 그리고 아이패드까지 모두 제대로 갖춰져 잇었던 것이다. 그저 돌 지난 아이 수면 동요를 틀어주는 용도로만 쓰이던 것이 내 손으로 오면서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영상 보는 데는 취미가 없어 업무용, 그리고 취미로 글쓰기, 그림 그리기 용으로 요긴하게 썼다. 특히 키보드는 입김 나오는 셔틀버스에서건 흔들리는 지하철에서건 굳건히 버텨주어 많은 글을 완성하게 했다. 지금까지 187편 가까이 된 글의 90%로는 아이패드, 그리고 키보드와 함께 쓴 것이니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알만하다. 그런 녀석이 이제는 인식조차 되지 않아 '연결 불가'가 되어버리니 씁쓸하다. 


필요가 없어진다고 그 기능이 다 했다고 버려지는 삶은 그게 사람이든 사물이든 똑같이 서럽다. 물론 물건이야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무생물이지만 어쨌거나 주인인 내게 각별한 존재였으니 다른 녀석이 와서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곁에 두기로 마음먹었다. 아쉽고 애달프고 안타까운 마음에 서랍 맨 위칸에 놓았다. 언제고 다시금  꺼내볼 수 있게 말이다. 


슬프게도(?) 어쨌거나 나는 매일 같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인지라 녀석을 대신할 키보드도 눈물을 머금고 구매했다. 남편이 같은 해에 사두었던 무아스 타자식 블루투스 키보드가 예쁜 쓰레기(?)라는 말에 십분 공감하며 저리 치워두고 내 손에 꼭 맞을 제품으로 한 개 골랐다. 일체형 키보드가 대신해준 아이 패드 스탠드도 하나, 키보드와 아이패드, 그리고 펜슬을 담아줄 파우치도 하나. 그렇게 사다 보니 10만 원 가까이 된다.


이리 보니 수명을 다한 녀석이 생각보다 많은 역할을 했지 싶어 고맙다. 그동안 편하게 글 쓸 수 있음은 모두 녀석의 공이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군데군데 멍(?)도 들고 실밥도 삐져나온 거구나. 나는 그런 줄도 몰랐다. 한 놈이 세 개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몇 년 동안은 왠지 못 버릴 것 같다.  


이러다 언젠가 내 17년생 아이패드도 고장이 나버린다면 어찌해야 할까. 새 제품이야 돈을 주면 금세 사겠지만 몇 년 동안 쌓인 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텐데 앞서서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들인 정을 억지로 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 난감하다. 


햇수로 6년이다. 6살이 된 아이패드. 그리고 곁가지 친구들. 

부디 잘 버텨주길. 조촐한 나의 심폐소생이 부디 효과가 있기를. 

잘 견뎌주기만 한다면 좀 더 아껴서 소중히 써야겠다고 다짐하는 내 마음이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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