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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03. 2022

일 하기 싫은 날

멈추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차오르면

일 하기 싫다. 나름 워커 홀릭이라고 자부하고 살았는데, 일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어제 처음 진짜 진지하게 나 스스로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종일 몰아치는 일을 하나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업무는 계속 주어지고, 맡은 일은 자꾸 우왕좌왕하게 되는데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복직하고 처음 일을 접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10여 년 전 생글생글 웃으며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빨리 퇴근 시간이 오기를 바라고만 있다. 언제, 집에 갈 수 있나.


예전엔 일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일을 하면 성취감도 느끼고 보람되잖아? 라며 스스로 일하는 즐거움에 빠져 살았다. 설령 일 하기 싫을 때가 있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적절한 상태로 회복이 되어 일을 해 나가곤 했었단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두려움인지 불안인지 걱정인지 모를 감정이 자꾸만 나를 잠식해 간다. 도망치고 싶고 외면하고 싶고 그런 기분이 긍정적인 마음을 앞서간다. 마음을 정돈해보고 싶어서 시간을 내어 브런치에 글을 써보지만 도통 효과가 없다. 보통 이럴 때 글을 쓰면 쓰면서 치유가 되었는데 지금은 붕 뜬 느낌.


집에서 나가기 20분 전. 그냥 갑자기 모든 시간이 멈춰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 싫은 마음, 도피하고 싶은 마음을 십분 공감하는 중이다. 내가 지금 딱 그렇다. 피하고 싶고 그만하고 싶고. 문득 내 삶을 돌이켜보니 뭐 하나 제대로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퇴사할 용기도 자신도 없고, 자꾸만 속으로 투덜대는 것밖에는 못하는 것도 한심하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무기가 될 만한 특기 하나 가진 것도 없는 자신이 초라하다. 조직의 일원으로 일하는 것 외에 나만의 무언가가 있었다면 내 삶은 또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지 않은 일을 상상해 본다.


어쨌거나 나에겐 대출금이 있고 토끼 같은 딸과 동반자가 있으니 먹고살기 위해선 지금 드는 이 감정을 잘 추슬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유치원 입학금도 낼 수 있고 주말에 맛있는 고기라도 구워 먹을 수 있을 터. 도통 잡히지 않는 마음을 잘 잡고 버텨야 한다. 일시적인 마음이라고, 흘러가는 바람 같은 거고 왔다 사라지는 감기 같은 거라고 달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다. 마침, 슬프게도 제일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성실하게 버티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이 감정도 마음 깊은 곳으로 가라앉겠지. 그러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평안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분명.




photo by Dmitry Schemele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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