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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3. 2022

전쟁 중

학교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짧고도 긴 경력을 담아 이야기를 적어보겠노라, 조금은 솔직한 에세이스트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었다. 꽁꽁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풀어내면 내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런데 웬 걸. 깜박이는 커서는 한 발자국도 나아가질 못했다. 내 안의 이야길 솔직하게 꺼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은 꼭 거쳐가는 곳, 애증의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내 시선으로 풀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날 선 댓글과 차가운 비평이 넘쳐나는 시절, 글로 오롯이 소통하고 싶었던 마음이 왜곡되어 전달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다.


내가 자격이 있을까.

난 그저 평범한 직장인인데 내 이야기를 너무 과장하거나 미화하진 않을까.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나쁜 댓글을 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질러 가자 자꾸 주춤하게 됐다. 오늘 말고 내일, 내일 말고 다음 주. 그렇게 한 달이 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학급 담임 이야기를 써보고 싶기도 했고 비담임으로서 학교를 바라본 이야기나, 내가 만난 아이들 이야기를 써보고 싶기도 했다, 동아리, 그리고 글쓰기 등등 쓰고 싶은 것이 너무 많으니 자꾸 방향이 엇갈렸다. 에버노트에 적어 내린 목차에서 주춤거리자 의욕이 꺾이더니 그 상태로 정지.


더군다나 매일매일이  바빴다. 변명 같겠지만 학교에선 생각할  없이  정신이 없었다. 몰아치는 아이들의 요구사항, 쏟아지는 공문, 사내 메신저 등은 끝없이 뭔가를 하게끔 만들었다. 아이들이 집에  후부터 제대로 시작되는 일과. 끝이 나면 동시에  아이를 하원 시키러 가는 , 집에 오자마자 다시 육아 출근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시간 쪼개 살아오던 나도 모든  스톱이 됐다. 중간중간 꾸준히 아팠고 불안했기에 새로운 주제의 매거진을 발행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언제까지 그럴 순 없는 노릇이다. 결심을 했으니 어쨌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킨 일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니 더더욱 마음을 잡고 다음을 예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쁘다는 이유로, 힘들다는 이유로, 하루하루 휘발되어버리는 삶을 당연하게 여기게 될 것이기에.


마침 어제 아이들과 소설 쓰기 방과 후 수업을 진행했다.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자신이 생각해온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가는 아이들 옆에서 이 글을 쓰며 생각했다. 그래, 써 보자. 써 보고 드러내 보자. 그리고 그 이후에 생각하자고. 주춤거리며 망설여온 인생이지만 지금부터는 그러지 말자고.


멈춰있던 에버노트의 목차를 정돈해 볼 생각이다. 글쓰기 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올 듯하다. 십 년 간 국어를 가르치며 느낀 감정과 생각들이 화수분처럼 끝없이 나온다면 일단은 적어보기로 한다. 누구도 나에게 드리우지 않는 빨간펜을 굳이 내가 나를 향해 곤두세울 필요는 없으니.


아이들에게 말했던 것을 내게 돌려줄 때다.


일단 써 봐.

멈추지 말고 일단 끝까지 써 봐.

넌 할 수 있어.

난 네 이야기가 궁금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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