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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n 04. 2022

남이 해준 밥

하도 맛이 없다고 하여 기대도 안 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대략 5,000원(실제로 4,700원 정도?) 하는 금액에 이 정도면 먹을만하다. 근처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발품도 손품도 덜 드니 썩 괜찮은 편이다. 하필이면 사랑해 마지않는 카레가 나와 후한 점수를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6월 2일부터 시작한 구내식당 급식. 기념으로 한 장 찍어 보았다. 원래 식전에 사진 찍고 인스타에 올리는 그런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거의 1년 만에 남이 해준 밥을 먹는 게 적잖이 신이 났던 것 같다. 요구르트와 소시지빵은 다 먹지 못하고 비닐팩에 담아 퇴근하는 길이 왠지 모르게 뿌듯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준 밥이란 걸 엄마가 되어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면서 느꼈다. 돈만 내면 살 수 있는 게 음식이라지만 어쩐지 바깥 음식은 많은 돈을 들여 먹어도 공허한 기분이 들었다. 허겁지겁, 잔뜩 해치운 끝에 남은 얼룩덜룩한 플라스틱 그릇을 멍하니 바라보다 내가 뭘 먹었나, 하는 생각에 울적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엄마가 해준 김치찌개, 볶음밥 따위가 강렬하게 그리워졌다. 아무리 연습해도 따라갈 수 없는 손맛이 원망스러워질 때쯤, 엄마가 나를 위해 밥상을 차려놓고 얼른 오라며, 국이 다 식겠다며, 재촉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릴 정도로 ‘밥’을 그리워했다. 내가 한 밥 말고, 남이 해준 밥.


도시락을 그만두고 맞이한 첫 밥상은 무조건 대만족이다. 메뉴가 어떻든, 맛이 어떻든 일단은 좋다. 나를 위해 만들어준 밥상이니까. 게다가 카레에 곁들인 콩나물국은 내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시원 칼칼한 맛! 찾고 찾던 맛인데 결국 급식에서 찾고야 말았다. 매콤한 카레를 듬뿍 더 밥에 비벼 놓고 콩나물국을 한술 뜬다. 캬~ 이 맛이다.


참, 불평하기 전에 일단 감사한 마음을 갖기로 한다. 1년 간 도시락을 싸며 굵어진 손가락 마디를 보며 늘 생각했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맛을 떠나 무조건 대단한 일이라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알맞고 적당한 어딘가를 향해 매일같이 반복해야 하는 요리는, 그 자체로 이미 엄청나게 대단하다 칭송받아 마땅하다고. 내가 요리를 잘해서가 아니라, 만들고 먹고 치우고 씻는 일의 고단함을 뼈저리게 느껴서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이 밥을 먹기 전까지 무수한 손놀림과 발걸음으로 고생했을 조리종사원님과, 뻔한 예산 안에서 매일 같이 나름 새로운 메뉴를 고민하며 머리를 싸맸을 영양사님을 위해 속으로 외치기로 한다.


잘 먹겠습니다, 저도 그 마음 너무나 잘 압니다, 부디 당신도 오늘 한 끼는 남이 해준 밥, 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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