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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Dec 29. 2022

나는 너무 부족한 엄마야

폭풍이 지나간 후 몰아치는 미안함

별일도 아닌 것에 자꾸 화가 나고, 무서운 표정을 짓게 된다. 정해놓은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자꾸 제한을 두고 말로 이기려고 한다. 때로는 감정을 담아 아이에게 하소연하기도 한다. 수십 년 전 우리 엄마가 나에게 했던 것을 그대로 딸에게 하고 있다.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며 나는 잘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던 것은 실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사건(?)의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어제저녁, 목욕이 조금 늦어졌던 것. 사실, 예전엔 목욕을 늦게 시키는 편이었다. 가끔은 밤 9시에도, 10시에도 씻기곤 했는데 유치원을 가고 나서는 그러다 잠드는 경우가 너무 많아 나름의 규칙을 정했더랬다. 유치원에서 하원하자마자 바로 씻기로. 당연히 따님께서는 씻기를 싫어하셨고(?) 나는 나름의 이유를 들어가며 설득과 회유, 협박 등을 이용해서 겨우겨우 씻기곤 했다. 이런 패턴이 거의 3년 이어지나 보니 '목욕'은 자연스럽게 내게 '스트레스'가 된 상태.


다시 어제로 돌아가서.

조금 늦어진 목욕타임을 틈타 다섯 살배기 내 딸은 벌거숭이 상태로 침대로 올라가 팡팡 뛰더니, 이불속으로 들어가 자기를 찾아보라는 둥 세상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시간은 어느덧 7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자, 10까지 세면 이제 목욕하는 거야, 그렇게 10,10,10, 거의 40까지 세었을 때에도 움직임이 없자, 강제로 목욕탕으로 끌고 들어가 씻기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이는 펑펑 울고, 나는 온갖가지 짜증을 내면서.


5분도 안 걸리는 목욕을 이렇게 힘들게 할 이유가 있냐, 매일매일 목욕하는 게 이렇게 힘드냐, 엄마는 이제 너 씻기기 싫다, 네가 씻어라.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다 쏟아내며 굳은 표정으로 몸을 닦이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아이는 펑펑 울며 엄마 미안해요, 하면서 두 손을 싹싹 빌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아뿔싸. 이건 아닌데. 이것까지 바란 것은 아닌데. 하면서 얼른 다시는 그런 행동하지 말라고, 그 정도로 네가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엄마도 너무 화내서 미안하다고 말하며 겨우 씻기고 나왔다.


거기서 끝났으면 참 좋으련만. 자는 시간이 또 문제였다. 아침 7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하는지라 늦어도 8시 30분엔 재우고 싶은 나와 더 놀고 싶은 딸은 또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자야지, 자야지, 싫어 싫어, 안 자.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결국, 유치원 다녀와서 하나도 놀지 못했다는 녀석에게 너 좀 전에 엄마랑 인형 머리 묶기 놀이도 하고, 컴퓨터 자판 치기 놀이도 하고, 사진 보기 놀이도 하고 하지 않았냐 하니, 머리가 굵어진 녀석이 글쎄, "엄마 때문에, 엄마가 좋아하는 사진 보느라 내가 노는 시간이 줄지 않았느냐"며 펑펑 우는 게 아닌가. 발도 동동 구르고, 악다구니를 써가며.


또 말을 하면 화가 날 것 같아 잠시 자리를 비우고, 말을 줄이고 겨우 가다듬은 후에, 아이가 잠들기 전에 원하는 놀이를 한두 번 해주고 같이 누웠는데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뜩이나 요새 자주 아파서 마음이 쓰이는데 나는 왜 그렇게 밖에 반응을 하지 못했을까 싶다가도 아이에게 해야 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소용돌이쳤다. 짜증 내지 않고, 화내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는 방법. 그런 게 있을까? 있다면 나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다시 오늘.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마음이 계속 쓰여 청소 한 바탕하고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며 오은영 박사의 유튜브 채널을 보다 보니, 어제 내 행동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이의 마음도 읽어주지 않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내가 과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훈육이 아니라 화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것 같다. 화났으면서 화나지 않았다고 둘러대며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했다. 아이는 아무래도 나보다 약자인데, 당연히 더 우위에 있는 내가 아이를 내 뜻대로 움직이려고만 했다. 영상을 보면 볼수록 어제의 내가 너무 부끄럽고, 어제의 아이에게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엄마(주양육자)의 마음이 아닐까.

감정에 휘둘리고, 판단에 아둔하고, 늘 그때 그때 다른 태도를 보는 엄마를 통해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언제나 내게 아이가 최우선이지만 그 마음의 표현이 잘못된다면 아이는 그 사랑을 잘 느끼지 못할 테지. 내가 그런 것처럼. 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면 갈수록 더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면 10대 중반이 되어 사춘기가 오면 나와 대화하지 않으려고 하겠지.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엄마였던가. 균형 있는 시선으로, 단호하지만 따뜻한 말투로 아이를 대하는 엄마였던가? 아무리 좋게 봐도 아닌 듯하다. 과거가 너무도 속상하지만- 돌아갈 수 없기에, 오늘부터 다시 결심해 본다.


적어도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 나아지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다시 아이의 마음을 충분히 들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


아, 오늘 간식으로 핫케이크 재료를 사서 함께 만들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 봐야겠다.

충분히 놀아주고, 사랑해 주고, 토닥여줘야겠다.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꼭,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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