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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an 17. 2024

 옷 정리

지나간 세월을, 이제는 보내주기

언니가 있어서 물려받은 옷이 많다. 오지랖이 넓고 다정하지만 말을 툴툴 거리는 언니는, 제 아이의 옷, 그러니까 내게는 조카의 옷들을 모아 두면서도 동시에 직장 동료들에게도 예쁜 옷을 받아 두었다. 아, 그거 우리 동생이 딸 키우거든요. 우리 조카 주면 딱 좋겠네요, 하면서.


한 없이 무뚝뚝하고 냉정하면서도 어려운 나의 언니는 늘 그런 식이었다. 내뱉은 말이 너무 날카롭고 아파서 오만가지 정이 뚝뚝 떨어지다가도, 한참을 두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언제나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달되는 그런 사람. 그 마음이 고맙고 고마워지는 사람. 그 마음을 고운 말로 표현할 줄은 모르는 사람. 소위 말하는 츤데레. 


무튼, 그렇게 아이가 커가면서 지금까지 받은 옷과 신발과 모자와 양말이 여섯 박스가 넘는다. 버리질 못하고 '언젠가 쓸모가 있을 거야.'라며 모아 둔 세월이 7년이다. 매 계절이 지날 때마다 솎아 내고,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옷장은 늘 꾸역꾸역 옷을 토해냈다. 정리해야지, 버려야지, 하면서 또 일 년이 지났다.


작년 겨울엔 맞았던 겨울 내복이 어느덧 껑충 자라 버린 딸아이의 발목과, 팔목을 가려주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불현듯 생각했다. 버리자, 정리하자, 입을 것만 남겨두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모아두지 말자, 필요하면 그때 사자.


오랜 시간 방치된 옷상자에선 퀴퀴한 냄새가 났다. 꺼내서 하나씩 보는데 하나 같이 새 옷이다. 입을 수 있지만 입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린 아이를 생각하며 과감히 정리하는데 묘한 쾌감이 밀려왔다. 무언가를 사는 즐거움보다 더 좋은 것이 버리는 즐거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하나씩, 하나씩 버리니 어느새 두 박스가 가득 찬다.


배냇저고리는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어서, 치마는 아주 비싼 거니까, 스타킹은 언젠가 입을 수 있으니까, 니트 카디건은 겨울에 입으면 딱이니까, 하며 모아 둔 것들이다. 그런데 사는 게 바빠서 그만 놓쳐 버린 게 대부분이다. 아침에 치마를 입히고 스타킹을 신기기엔 나는 늘 바쁘고 시간에 쫓겼으며, 아이의 피부는 니트 카디건의 촉감을 견디기엔 한없이 약했다. 이제는 분윳물이 노랗게 물들어 빠지지 않는 배냇저고리는 글쎄. 어쩌면 나의 추억을 아이에게 강요하듯 주는 것일지도. 훗날 손녀에겐 예쁜 배냇저고리를 사주는 걸 딸이 더 좋아할 수도. 


버리지 못하는 이유들을 반대로 뒤집으니 버릴 이유가 됐다. 간직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니, 그것은 바로 정리할 근거가 되고 말았다. 생각이 바뀌자 망설임이 없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넘게 옷을 버리고 상자에 담았다.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오늘 못한 것은 내일 하면 그만. 오늘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해야 한다는 강박에 나를 들볶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오늘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을 하기로. 그래서 나와 타협해 정리한 것이 두 박스다.


아이를 데리러 가기 전에 옷을 담아 헌 옷 수거함에 버린다. 한 살, 두 살, 세 살, 그리고 여섯 살까지의 아이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 세월들이 떠나간다. 함께 놀이터에서 놀던 날, 처음 간 키즈 카페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던 날, 걸어가다 꽈당, 하고 넘어져 손바닥을 다친 날, 유치원 첫날 예쁘게 입은 원피스 덕에 행복했던 날을 마음에 담아 보낸다.


개운하다.


버리는 것은 채우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쉬움보다는 편안함이 감돈다.


오늘은 조금 일찍 나왔다.

하원하러 가기 전에 붕어빵을 사서

손에 하나 쥐여 줘야지.


그렇게 또 하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담아 추억을 만들어야지.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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