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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Feb 01. 2024

두려움은 저 멀리

일어나지 않은 일은 걱정하지 마.

아마도 2024학년도에는 1학년 학년 부장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방학 중에 한 번 연락하겠다는 교감 선생님의 전화는 한 통을 받지 못했지만(사실은 다른 업무 부장을 원했다.) 며칠 동안 갑자기 1학년 자유학기제 관련 공문이 내게 배정되는 것을 보고 직감했다. 


'아. 나 1학년 부장이구나.'


굳이 학년 부장을 해야 한다면 정들고 예쁜 2학년 아이들을 지도하고 싶었는데, 어쩐지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닐 것 같긴 했다. 2학년을 맡으면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가야 하는 게 부담이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은데 왠지 아쉽다.


1학년이 싫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2년 연속 1학년을 가르쳤으니 이제는 좀 새로운 아이들을 적응시키는 것보다는 익숙해진 아이들과 서로 맞춰가며 재미있는 교육활동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성향 상, 하나하나 일일이 알려주는 것보다는 알아서 탁탁 센스 있게 움직여주는 3학년과의 합이 제일 잘 맞기도 하고. 

(아.. 나의 3학년. ㅠ.ㅠ)


하지만, 어쨌든 90% 이상의 확률로 1학년 부장을 하게 될 거라면

겁먹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겁먹지 않기로.

앞서 걱정하지 않기로.




사실, 학년 부장을 몇 년 동안 극구부인 했던 것은 한 가지였다.


반항하고, 거친 아이들, 그러니까 소위 말해서 선생님의 지도가 통하지 않는 아이들을 지도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하게 유난히 그런 아이들이 어려웠다. 아무리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해도 닿지를 않는 아이들. 아무리 먼저 손을 내밀어도, 내민 손이 무색하게 항상 반항하는 아이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꽤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며 마음이 단단해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늘 학기 초에 반에 들어가면, 이번에는 누가 가장 기가 세서 나를 힘들게 할까, 를 먼저 찾아보는 게 습관이 될 정도로 그런 아이들은 늘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담임으로서도 지도하는데 자신이 없는데 하물며 학년 부장이 되면?

과연 아이들을 카리스마 있게 지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답이 도통 나오질 않았다. 

일단 부딪혀 보자고 덤벼들 정도의 깡도 없었고.





그런데, 이번에는 마음을 먹고 도전해 보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이. 학교에서는 이제 핵심적인 일을 맡아서 해야 하는 나이이기도 하고, 스스로 가두어 둔 마음의 벽을 부수고 조금 더 성장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 안에 있는, 나를 힘들게 하고 두렵게 하고, 어렵게 느끼게 했던 그 무언가를 찾아낸다면.

그래서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과 함께 1년을 보내며 내가 그 '무언가'를 깨 부술 수 있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더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여.


마침, 세상이 엄청나게 변한 것처럼

학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바뀌었기에

나처럼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학년 부장도 한 명쯤은 필요하지 않을까 하여.




2월 14일에 최종 업무 분장이 발표된다.

24년에는 나를 만난 아이들과

내가 만날 아이들과


함께 손 잡고 나아가는,

그런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두려움은 저 멀리.

일어나지 않은 일은 미리 걱정하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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