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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r 26. 2024

잘하고 있어

가장 듣고 싶었던 말 

퇴근길에 노점에서 김밥 두 줄을 샀다. 원래 오징어 볶음을 먹으려다 김밥을 샀다는 것은,

오늘 무척이나 힘들었다는 것이다. 

힘들면, 라면을 먹거나 김밥을 먹거나 튀김을 먹는다. 


요새 자주 그러하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가 있다. 남학생인데 여러 가지 가정 상황과 함께 초등학교 때의 경험이 맞물려 지도가 무척 힘들다. 휴대폰을 내지 않고 몰래 수업 중에 휴대폰을 하다 걸리고, 수업 시간엔 교실 안에 있는 탈의실에 들어가 숨기도 한다. "그러면 안 된다."라고 지도하고 있는데 자기감정이 조절이 안 돼서 뛰쳐나가 버리기도 하고 한 번은 무단으로 학교 담을 넘어 나가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2주 동안 벌어진 일이다.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있다. 그래, 너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힘들었지, 마음을 정리하는 방법, 적절히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한 번 더 보듬고 지도해 줘야지, 하는 생각까지는 든다.


문제는 실제로 그런 상황이 되면, (예를 들어 몰래 휴대폰을 하다 걸리거나, 말하는 도중에 뛰쳐나가거나 하는 등) 어떻게든 교사라는 가면을 쓰고 지도를 하고 있지만 마음 한편은 조금씩 저물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삶을 애써서 돌보면서도 속으로는 자꾸만 회의감이 들고 버거울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년부장이니까 해나가고 있는 것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년부장이어서 기꺼이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니까.


혹시 저 아이가 날 때리지 않을까.

나에게 욕을 하면서 나가지 않을까.

그런 모습을 보고 다른 아이들이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닌 척 하지만 사실, 이곳에서 3년째 근무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 얼른 시간이라도 금방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아직 3월이다. 끝나지 않는 3월이, 이 긴 시간이 야속하다.




이렇게 나를 애태우는 아이가 오늘도 또, 사고를 쳤다. 

5교시 수업 중에 지도가 불가능하여 교장실로 끌려가(?) 교장 선생님과 상담을 받았다. 

교장 선생님은 아이와의 상담 후 느낀 점과 앞으로의 지도 방향에 대한 내용을 담아 긴 글의 메시지를 보내셨다. 그 글을 읽고 있는 학년 부장인 나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불편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있는데 녀석이 무례하게 대해 무척이나 속상하셨던 선생님께서 학년부실로 찾아오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가셨다.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요지는, 1학년이 기본 개념이 잡혀있지 않고 무서운 선생님이 강하고 엄하게 지도할 때에는 지도해야 한다, 그런데 1학년은 그게 부족한 것 같다, 였다. 


평소 친밀한 분이기에 죄송한 마음이 먼저 앞섰고, 사실 어떤 면에선 맞는 부분이라 서운함을 느끼진 않았다. 내가 가장 부족하게 느끼는 '카리스마'가 없어서, 아이들을 강하게 휘어잡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매일 같이 그런 생각에 허우적거리며 겨우겨우 감정을 조절하고 있는 내게

누구라도 한 명이라도 한 번이라도 '잘하고 있어', '힘들지?', '어린애 키우면서 일하느라 고생이 많아.', '매일 같이 새벽이나 밤늦게 일하는구나. 에고.. 고생했어.'라는 말, 한 마디만 건네주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자체가 서운하고 속상했다는 것이겠지만.

무튼 그러하다.


이제 겨우 3월을 마무리하는데

남은 시간, 잘 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더 앞서는 밤.

도망치는 것이 때로는 도움이 된다던데

그럴 수도 없고

난감하다.




내일은 부디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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