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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몬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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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2. 2024

레몬 사탕


“하나씩 드세요.”


하며 노오란 색 뽀얀 사탕을 돌리면

사람들은 언제 유럽을 다녀왔느냐고, 이탈리아는 볼 게 정말 많으냐고

대신 호들갑을 떨어주곤 했다.


그러면 희수는 그저 말없이 웃으면 되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아서 이야기를 상상해 대었다.


“어머. 비행기값 비싸지 않아?”

“나도 추석 끼고 가야겠다.”

“자기는 시댁 안 가?”

“자기 몰라? 주연 씨 시아버님 작년에 돌아가셔서 우리 다녀왔잖아!!”

“어머어머!!”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사이,

희수는 어느새 황금연휴 기간에 유럽을 다녀온 사람이 되었다.

아니, 이제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레몬 사탕 하나가 불러온, 작은 바람은

태풍이 되어 희수 곁을 지나갔다.


유럽은 어떠냐며, 이탈리아 남자들은 정말 그렇게 멋지냐며,

도대체 여행 다녀온 사진은 왜 안 보여주느냐며, 아니 차라리

SNS 계정을 물어보는 동료들을 겨우 떼어내니

점심시간이 끝날 시간이 다 되어있었다.


하루 종일 시달린 통에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건물 14층, 야외 휴게소 내 비밀 아지트에서 담배나 한 대 태울까,

아니면 회사 앞 카페에서 좋아하는 바닐라 라테를 마실까,

고민하며 레몬 사탕을 하나 까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상큼한 향이 입 안에 가득 담겼다.

혀를 굴려 그 향을 음미하며 천천히 녹여 먹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세 살 터울의 언니와 함께 사탕을 먹을 때면

희수는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천천히 사탕을 녹여 먹었다.

성질 급한 언니가 어금니로 와사삭 깨물어 먹는 소리를 들으면

묘하게 이긴 기분까지 들었다. 입 안에 들어와 한 번에 녹아버려

군데군데 흔적을 남기는 초콜릿보다는

마음먹은 대로 먹을 수 있는 사탕이, 희수는 좋았다.

녹여 먹고 싶으면 녹여서, 깨물어 먹고 싶으면 깨물어서 먹는,

그 맛이 좋아 희수는 사탕을 늘 달고 살았다.


취업을 준비할 때까지도 희수는 술보다도, 커피보다도 사탕을 선택했다.

레몬 사탕 입에 물고, 천천히 내린 드립 커피 한 잔 타 놓고

수백 개의 자소서를 쓰고,

수천 개의 불합격 메일을 받고,

수만 번의 눈물을 흘린 후에야,


지금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목숨 바쳐 일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결혼 전까지는 다니고 싶었다.

아니 결혼을 해서도, 솔직히 여건만 된다면 출산을 하고 아이를 낳고,

뭐 그런 평범하다고 포장하지만 사실은 가장 힘든, 그런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었다.


처음 출근 하던 날, 희수는

책상 위에 레몬 사탕 가득 든 유리병을 놓았다.

오며 가며 나눠 먹어야지,

힘들 때 먹어야지,

아껴 먹어야지, 하며.


세후 200만 원도 안 되는 돈밖에 안 주면서

일은 정말 끝도 없이 시켰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칼퇴는 이벤트였다.

선배들은 “쉬엄 쉬 엄해, 그러다가 병 나! “ 라며 걱정을 해주었지만

정작 정말 아파 병가를 쓰면

“그러니까 자기 건강관리는 자기 스스로 해야 한다니까? “라며

희수의 험담을 해 댔다.


앞과 뒤가 다른 선배들과의 대화가 힘들어질 때면

희수는 조용히 파티션 뒤에 숨어서 사탕을 하나씩 먹곤 했다.

입 안에 오물오물 돌려가며 먹으면서 생각했다.


괜찮다 괜찮다...


실상 괜찮은 날보다는 괜찮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괜찮다고 부러 힘을 주어 되뇌던 날은, 사실

괜찮지 않아 울고 싶었던 날이었다.

희수는 화장실에서, 옥상에서, 비상계단에서 많이 울었다.

그때마다 유리병 사탕의 개수도 하나씩, 줄어갔다.

고되고 힘들면서 달콤하고 새콤하기도 한, 시간들이

뭉텅이가 되어 흘러갔다.


웹소설에서 자주 보는 그 뭐냐, 사내연애 같은 것도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희수에게

누가 봐도 집적대는 사수를 굳이 멀리하지 않은 것은

이 정도 남자라면 연애 상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선택한 첫 연애 상대는

좋은 점 하나 찾지 못하고 끝을 맺었다.

큰 키에 쭉쭉 뻗은 다리가 매력적이라던 상대는

여자가 멀대같이 키만 크고, 팔다리에 살이 없어 징그럽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이별을 선언했다. 여자란 모름지기 품 안에 쏙 들어와야 좋다는 말과 함께.


헤어짐을 통보받던 그날은 슬프지 않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예견된 일 같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아 새로웠지만

그 새로움이 지친 것은 희수도 마찬가지였으니

어쩌면 헤어지자 말해준 상대가 고맙기까지 했다.




두 달 만에 다른 과 신입과 결혼을 한다는 사내 공지를 본 날,

희수는 유일하게 둘의 연애를 알던 동료 주경이의,


- 너 괜찮아?


라는 메시지를 보며

유리병에서 사탕을 하나 꺼내어 입에 넣었다.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고였다.

괜찮다, 고 답을 해주어야 하는데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가 도리어 키보드를 칠 수 없었다.



와그작- 와그작- 와그작-



달콤 쌉싸름한 레몬즙이 입 안에 가득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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