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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몬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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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4. 2024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눈을 떴다.


안경을 벗어 모든 것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커튼 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빛은, 묘하게 밝은 것이

새벽을 지나 아침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분명 이불 걷어차고 소은의 발 밑 어딘가에서

잠들어 있을 딸아이를

찾기 위해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져 놓았을 안경을 찾았다.

어젯밤, 아이를 재우러 들어온 것은 기억나는데

잠이 든 것은 기억에 나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와 눕자마자 잠이 들었으리라.


- 오늘은 자지 말고 꼭 나와!


라며 신신당부하던 남편의 말은 사뿐히 무시한 채

아마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이 들었을 것이다.

소은은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잠은, 잘 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남편은 그런 소은을 이해하지 못하는,

숨결 하나에도 잠이 깨어버리는 사람이었고.


안경을 끼니 세상이 더욱 환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이 정도 더듬거리면 잡혀야 할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바로 위에 있는 침대에서 자고 있어야 할,

아니 사실은 미리 일어나 휴대폰을 하며 

기다리고 있어야 할 남편의 숨결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 5년 만에 태어난 딸은 예민했다.

사람들 손을 타질 않아 

소은이 매일 같이 업어주어야만 했다.

아빠는 예외였으나 잠은 꼭 엄마랑만 자려고 했다.

여러 번 시도하다 악에 받쳐 우는 아이를 이기지 못해

아이 옆에서 자기 시작한 것이 벌써 7년이었다.

이제는 잠결에도 아이가 어디에서 자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아침에 어딜 갔나, 싶어

부스스한 머리 그대로 방 밖을 나섰다.

사방은 고요했다.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았다.

소은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자신이 있는 곳은 집이 맞는데 집이 아닌 것 같았다.

살던 곳이 아닌 것 같은 묘한 느낌은

자다 일어나 몽롱한 소은의 머릿속을 각성시켰다.


- 우리 집이 이렇게 깨끗했던가?

- 어제 분명 장난감을 다 정리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본능적으로 이곳저곳을 훑었다.

티브이, 세탁기, 청소기, 그리고 아일랜드 식탁까지.

뭐 하나 제 자리를 잃은 곳은 없었으나

뭐 하나 안정감을 주진 못했다.

혼수를 준비하러 다닐 때 300만 원을 들여 맞춘

리클라이너가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여기는, 분명 소은의 집이었다.

그런데 소은은 어딘가 모르게 너무나 불편했다.


숨 막힐 듯 조용한 것도 그렇고

지나치게 깨끗한 것도 그랬다.

원래부터 정리랑 거리가 멀던 소은이었다.

직장은 사람들 보는 눈이 있어 그나마 최소한의 

정리를 해두었지만, 집은 막무가내였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애 키우는 집은 다 그렇다.'며

청소를 미루곤 했다. 

발에 차이는 레고 블록이 엄지발가락을 강하게 짓눌러

통증이 밀려와도, 에이씨- 하고 넘겼다.

태생이 지저분한 것을 잘 견디는 소은이었다.

남편도 더했으면 더 했지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를 쏙 빼닮은 딸은 한술 더 떴다.



그때였다.

디리릭, 문이 열리고 남편이 들어왔다.


"오빠, 어디 갔다 왔어? 하윤이는?"


안 쓰던 유선 이어폰을 끼고 있는 남편이 어색했다.

그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멈추고

소은을 지나쳐 바로 주방으로 갔다.


"하윤이는 어딨어? 왜 말을 안 해?"


냉장고에서 꺼낸 물을 벌컥벌컥,

한 번 더 벌컥벌컥 마시고, 캬- 하며 시원한 티를 다 내고 나서야

남편은 소은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침부터 누굴 찾는 거야. 하윤이? 걔가 누군데?" 

"이 사람이 미쳤나, 우리 딸, 하윤이."


우리 딸, 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하자

남편은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이 사람이 진짜 미쳤나? 

어제 일찍 잠들었다고 삐친 건가?

그렇다고 애랑 나가서 자기 혼자만 들어오는 건

더 미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남편 쪽으로 다가가자,

남편은 갑자기 소은을 와락, 안아 주었다.

그리고 다정한 손길로 등을 한 번, 두 번, 쓰다 듬더니

아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은아... 많이 힘들지....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나갈까?"


하지만 소은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 남편의 반응이 어딘가 생경해서 불편했다.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평소처럼 바로잡고 싶었다.

어제 잠들 때, 하윤이랑 약속한 것이 있었다.

키즈카페를 가겠노라고.


"힘들긴 뭐가 힘들어. 빨리 하윤이가 오늘 키카 가자고 했다고. 씻기고 나가야지."


남편의 눈빛이 빠르게 변해갔다.

입술은 달싹이고 손은 어쩔 줄을 몰랐다.

불안해한다는 것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왜, 뭔데? 왜 그러는데. 말을 해 줘. 답답해 죽겠네."


불안함을 견디다 못해 소은이 짜증을 냈다.

남편을 기다리느니 직접 하윤을 찾는 게 나았다.

머리를 질끈 묶고 집안을 샅샅이 뒤지지라.

숨바꼭질을 좋아하는 하윤이 어딘가 숨어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작은 방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순간,

문 앞에 걸린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2017년 5월.


너무나 선명하게 적힌 숫자가

소은의 눈에 콕, 하고 들어왔다.


어제가 2024년 5월 13일이었는데

지금은 2017년 5월 14일이라고?

이게 말이 돼?







유난히 잠이 들지 않고

엄마를 들들 볶는 딸이 너무나 미운 밤이었다.

자러 들어왔지만 한 시간 동안 울며

자기 싫다고 떼를 썼다.

어르고 달래고 화를 내다 지쳐

속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 제발, 이 모든 게 다 사라졌으면. 그냥 하윤이 낳기 전으로 돌아갔으면. 



너무나 간절했던 소은의 마음이

이렇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2024년을 살던 소은은,

2017년, 하윤이 낳기 전으로 정말, 돌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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