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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몬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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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May 18. 2024

털썩.


소은은 믿을 수 없었다.

어젯밤엔 너무 심하게 징얼거리는 아이가

밉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서 그냥

마음속으로 투덜거린 것뿐이었다.


이렇게 쉽게 들어줄 거였다면

예전에 로또 당첨을 빌었던 것들,

이미 돌아가신 친정 엄마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것들은,

왜, 왜 들어주지 않았느냐고 소리치고 싶을 정도였다.


눈에선 눈물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마치 소은의 마음을 달래주려는 듯

조금씩, 조금씩. 하지만 끝없이.


"흐흑... 흐흑..."


갑작스러운 소은의 눈물에 당황한 건

재현이었다.


곤히 잠든 소은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일어나 운동을 다녀온 직후였다.

요 근래 일 때문에, 그리고 임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서

오늘은 꼭 기분 전환 겸 어디 멀리 나갔다 오자고 할 참이었다.


- 내가 검색해 본 게 있는데

파주 쪽에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더라,

아니면 영종도는 어때? 을왕리 가서 놀다 올까?

하면, 소은이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겠지,

그러면 미소 속에 가려진 슬픔을

말없이 달래 주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재현은 말없이 소은을 꼭 안아 주었다.

연애를 할 때부터 소은은 가끔 그런 적이 있었다.

애초에 작은 일에도 크게 웃고, 울던 소은이었다.

감정에 좀처럼 휘둘리지 않는 재현과 다르게

소은은 길거리에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봐도,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타며 노는 친구들을 봐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깊이 몰입했다.


그런 소은은 결혼 후에도

살뜰히 양가 부모님을 챙겼다.

재현의 부모님에게도 자주 전화를 하며

안부를 물었다. 시어머니와의 통화가 어렵지 않으냐고

그렇게 자주 전화 안 해도 된다고 

말하면 소은은


"아버님 돌아가시고 얼마나 적적하시겠어. 

나는 아주 잠깐 시간을 내서 전화한 거지만

어머니한테는 아주 길고 행복한 시간이실걸?"


하며 웃는 소은이 사랑스럽고 고맙고, 했다.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 내 아내여서

다행이다, 하며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소은을 꼭, 안아 주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툰 재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이었다. 




소은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흐느끼듯 쏟아내듯, 아니 어쩌면 무너지는 것 같은

울음은 그쳤다가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재현이 고마웠다.

왜 그러느냐고,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는

재현이, 소은은 너무나 고마웠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사실은 내가 미래에서 왔어.

우리에겐 하윤이라는 딸이 있는데,

엄청 똘똘하고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내가 어젯밤에 자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냥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하면 눈물이 쏟아졌다.


-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됐어. 네가 엄마냐?

- 아니, 그런 생각 한두 번씩은 하잖아. 그게 이렇게 될 줄 알았어? 

- 그래도 넌 엄마 자격 없어.

- 그냥 하소연이었다고. 누구나 한번씩은 하는 그런 거!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겨우 부여잡고 있던 소은은,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윤이 어릴 적, 아기 띠 둘러메고 자장가 불러주며

고물고물 잠들던 하윤이를 바라보며

한 손으로 몰래몰래 훔쳐 읽었던 이야기 속의 

여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소은처럼 놀라고 

당황하고

화를 내다가 마지막 생각한 것은 바로

'자는 것'이었다.


잠들어서 이 세계로 왔으니

다시 잠이 들면 그 세계로, 2024년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을 볼 때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되니 믿을 것은 그것뿐이었다.


- 어쩌면 꿈일지 몰라. 그래, 일단 뭐든 해보자.


눈물을 그치고 벌떡, 일어나 

침실로 갔다.

원래는 있어야 할 자리에

하윤이의 물건은 어느 하나 없었다.

작은 베개, 얇은 이불, 그리고 꼭 끌어안고 자는 

상어인형까지. 


소은과 재현의 물건으로만 가득한 침실을 

가만히 바라보던 소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 울지 말자. 갈 수 있어. 이건 꿈이야. 꿈일 거야.


가만히 누워 눈을 감았다.


- 잠이 올까, 잠이 와야 하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소은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울다 말고 침실로 향하는 소은을

말릴 틈도 없었다. 

어쩌면 말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너무나 생경할 만큼 이상한 소은의 행동을

모두 지켜본 재현은 소파에 앉아

가만히 생각했다. 


- 하윤이라고 했어. 하윤? 도대체 누구지?


연애하면서도 그렇게까지 운 적이 없던 소은이었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지만 

이성을 놓을 정도로 빠져드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지금 침실에 있는 소은은

재현이 알던 소은이 

아닌 것 같았다.


묘한 불편감이 재현을 휘감아 왔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도 없는 듯 고요한 거실에는

적막을 깨는 초침만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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