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엔 드문 드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토요일 낮, 늦은 오후를 향해 가는
시간 치고는 너무 한가해 보였지만
희수는 도리어 좋았다.
오늘은 가능하다면 사람들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
해보고 싶지 않았던 일을
해낸 날, 오롯이 느낀 감정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다.
우드톤의 인테리어는
긴장했던 희수의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최신 가요 대신 잔잔하게 흐르는
재즈풍의 음악도 한 몫했다.
가끔 새벽녘에 들었던
연주곡도 이따금씩 흘러나왔다.
“큼-“
인기척에 놀란 희수는
약간 짜증이 났다.
누구지? 누구길래?
“저… 기요!”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한 남자가 희수 곁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단정한 차림으로.
순간 희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음악에 빠져 카페인 것을 잊고 말았다.
들어온 지 3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아…!”
“주문.. 하시겠어요? “
“아..! 네네!”
좀 전까지 복수극의 주인공이었던 희수는
사라지고 카페에서 주문도 안 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진상 고객이 되어 있었다.
“어… 저…!”
뭐라도 말을 하고 주문을 해야 하는데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그게… 하면서 뜸 들이고 있는데
그 목소리 좋고 다정한 직원은
천천히 희수를 기다려주었다.
“음… 아이스 바닐라 라테 한 잔이요. “
“네! 계산은 나가시면서 해주시면 돼요.”
아무것도 모르는
밝고 명랑한 말투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짜증이 밀려왔다.
그까짓 커피
내가 안 시키고 나갈까 봐 그래?
내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알지도 못하면서!
알 수 없는 분노는 잘못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괜한 화풀이가 될 것 같았는데
솟아오르는 감정은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커피 나왔습니다.”
탁-
테이블 위엔 커피 한 잔
그리고 작은 쿠키 몇 개가
시킨 적 없는 쿠키가 놓여있었다.
작은 접시 밑에 적혀 있는
글씨를 보자,
그때까지 억지로 참고 있던 눈물이
줄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이때를 기다리고
흐르는 것처럼.
[아까부터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커피도, 쿠키도 서비스예요.
편히 있다 가세요.
- 추신: 제가 직접 내린 드립커피예요.
쿠키가 좀 달아서 ^^;]
이유를 알 수 없는 친절에
조금 전에 날 서게 반응한
스스로가 너무나 민망했다.
좀 전엔 정말 너무 화가 나서
생각했던 말을 뱉을 뻔했던 것이
몸서리치게 부끄러웠다.
주문했던 바닐라 라테는 아니었다.
가끔, 희수가 집에서 내려서 먹는
산미 가득한 핸드드립 커피였다.
사실, 쿠키 같이 달디 단 디저트에는
쌉싸름한 커피를 먹는 것이 좋았다.
'어떻게 내 취향을...'
바닐라 라테는 맛은 있지만
너무 달아서 끝 맛이 별로였다.
하지만 드립 커피는 물처럼도 마실 수 있는 희수였다.
직접 내렸다던 커피는 진하면서도
상큼하면서도 고소했다.
한 입을 머금고 향을 즐기면
온몸에 진한 커피 향이 맴도는 듯했다.
곁들인 쿠키도 먹을 만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너무나 맛있었다.
오트밀이 적절히 들어가 씹는 맛이 있으면서도
초콜릿 칩이 톡톡, 입 안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제야 희수는
주변이 보였다.
급하게 들어오자마자 앉고
한 참을 멍하게 있다가 놓친 것들.
주변의 풍경, 오늘의 날씨.
'이제 뭘... 할까...?'
아까부터 계속했던 생각이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뭔가를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처럼 스케줄러 빡빡하게
해야 할 일로 채우고 싶었다.
'뭐라도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이제 그렇게 우진과 현아 앞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털어놓았으니
그 순간부터는 잊고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찾아간 것이었으니.
일단 나가자.
발 닿는 대로 걸어가다 보면
뭔가가 보이겠지.
뭔가 할 것이 생기겠지.
맛 좋은 커피와 쿠키를 대접해 준
이 카페를 잊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하면서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목소리 좋고 다정하며 친절한 직원은
조용히 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