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레몬 사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녕 Jun 06. 2024

바닐라 라테


카페엔 드문 드문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토요일 낮, 늦은 오후를 향해 가는

시간 치고는 너무 한가해 보였지만

희수는 도리어 좋았다.



오늘은 가능하다면 사람들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

해보고 싶지 않았던 일을

해낸 날, 오롯이 느낀 감정을

어떻게든 해소하고 싶었다.



우드톤의 인테리어는

긴장했던 희수의

마음을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최신 가요 대신 잔잔하게 흐르는

재즈풍의 음악도 한 몫했다.

가끔 새벽녘에 들었던

연주곡도 이따금씩 흘러나왔다.




“큼-“




인기척에 놀란 희수는

약간 짜증이 났다.

누구지? 누구길래?



“저… 기요!”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니

한 남자가 희수 곁에

가만히, 서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단정한 차림으로.




순간 희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음악에 빠져 카페인 것을 잊고 말았다.

들어온 지 30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아…!”

“주문.. 하시겠어요? “

“아..! 네네!”




좀 전까지 복수극의 주인공이었던 희수는

사라지고 카페에서 주문도 안 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진상 고객이 되어 있었다.




“어… 저…!”




뭐라도 말을 하고 주문을 해야 하는데

쉽사리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 그게… 하면서 뜸 들이고 있는데

그 목소리 좋고 다정한 직원은

천천히 희수를 기다려주었다.




“음… 아이스 바닐라 라테 한 잔이요. “

“네! 계산은 나가시면서 해주시면 돼요.”




아무것도 모르는

밝고 명랑한 말투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짜증이 밀려왔다.



그까짓 커피

내가 안 시키고 나갈까 봐 그래?

내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알지도 못하면서!




알 수 없는 분노는 잘못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괜한 화풀이가 될 것 같았는데

솟아오르는 감정은 조절이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커피 나왔습니다.”



탁-



테이블 위엔 커피 한 잔

그리고 작은 쿠키 몇 개가

시킨 적 없는 쿠키가 놓여있었다.




작은 접시 밑에 적혀 있는

글씨를 보자, 

그때까지 억지로 참고 있던 눈물이

줄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마치, 이때를 기다리고 

흐르는 것처럼.







[아까부터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커피도, 쿠키도 서비스예요. 

편히 있다 가세요.

- 추신: 제가 직접 내린 드립커피예요.

쿠키가 좀 달아서 ^^;]




이유를 알 수 없는 친절에

조금 전에 날 서게 반응한

스스로가 너무나 민망했다.




좀 전엔 정말 너무 화가 나서

생각했던 말을 뱉을 뻔했던 것이

몸서리치게 부끄러웠다.




주문했던 바닐라 라테는 아니었다.

가끔, 희수가 집에서 내려서 먹는

산미 가득한 핸드드립 커피였다.

사실, 쿠키 같이 달디 단 디저트에는

쌉싸름한 커피를 먹는 것이 좋았다. 




'어떻게 내 취향을...'




바닐라 라테는 맛은 있지만 

너무 달아서 끝 맛이 별로였다.

하지만 드립 커피는 물처럼도 마실 수 있는 희수였다. 

직접 내렸다던 커피는 진하면서도

상큼하면서도 고소했다. 

한 입을 머금고 향을 즐기면 

온몸에 진한 커피 향이 맴도는 듯했다. 

곁들인 쿠키도 먹을 만했다.

아니 솔직히 이야기하면 너무나 맛있었다. 

오트밀이 적절히 들어가 씹는 맛이 있으면서도 

초콜릿 칩이 톡톡, 입 안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제야 희수는 

주변이 보였다.

급하게 들어오자마자 앉고

한 참을 멍하게 있다가 놓친 것들.

주변의 풍경, 오늘의 날씨.




'이제 뭘... 할까...?'




아까부터 계속했던 생각이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뭔가를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중고등학교 때처럼 스케줄러 빡빡하게

해야 할 일로 채우고 싶었다.





'뭐라도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으니까.




이제 그렇게 우진과 현아 앞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털어놓았으니

그 순간부터는 잊고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찾아간 것이었으니.




일단 나가자.

발 닿는 대로 걸어가다 보면

뭔가가 보이겠지.

뭔가 할 것이 생기겠지.





맛 좋은 커피와 쿠키를 대접해 준

이 카페를 잊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하면서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그 목소리 좋고 다정하며 친절한 직원은 

조용히 주변을 정리하고 있던 참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엔딩 크레디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