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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레몬 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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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Jun 12. 2024

만남

"뭐 도와드릴까요?"




중저음의 목소리가 희수의 귓가에 맺혔다.

언제 말을 걸까, 타이밍을 보고 있던 희수였다.

이번엔 조금 매끄럽게 말해야지, 

부드럽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계속 되뇌던 중이었다.




웃으며 상냥하게 물어보는 그가

어쩐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에게

이토록 다정한 마음을 느낀 것은

처음인 듯했다. 

그 점이 기쁘면서도

슬픈 마음이 들었다.

이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낼 틈이 없었다.

이번엔 반드시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야 했다.




"얼마.. 죠?"




고마웠어요, 제가 오늘 조금 힘들었는데

주신 쿠키 덕분에 기분 전환이 많이 됐어요,




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뚝딱거리며 

말을 뱉고는 카드만 불쑥 내밀어 버렸다.

괜한 화풀이가 얼마나 지질한지 알면서도

자꾸만 툭툭 나가는 마음을

희수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쏘아대는 희수의 말을 

그는 잘도 받아쳤다.




"서비스예요. 이번엔 돈 안 받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요..?... 절 아세요?"



"흠. 뭐.. 절반은 맞아요."



"네?"



"아무튼. 오늘은 아무리 카드 주셔도

계산 안 해요. 기분은... 좀 좋아졌어요?"



"아.. 뭐... 쿠키도 맛있고... 커피도.."



"맛있죠?"



"아.. 네. 맛... 있더라고요.." 



"그럼 됐어요. 오늘 커피값은 좋아진 기분으로

대신하는 걸로 하죠!"




한 번도 겪지 못한 친절, 호의, 배려가 갑자기 

훅 들어오니 희수는 정신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쿠폰, 만들어 드려요?"



"네?"



"아니. 자꾸 쿠폰을 보시길래...

정 찜찜하시면 앞으로 자주 오세요. 10번 오시면

1번은 커피 공짜!"



쿠폰을 보고 있었을 리가.

어떻게 하면 정중하게 거절하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까 고민 중이었다.

더 이상 사람에게 말로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말로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었다.

이래서 카페 사장을 하나 싶을 정도로.

아, 이래서 이 카페가 입지는 별로인데도

사람들이 드문드문 끊이지는 않는구나, 싶을 정도로.

오늘 헤어진 전 남자 친구와 직속 후배의 결혼식을 

다녀온 게 맞는가 싶을 정도로.






딸랑-



결국 가게문을 열고 나온 희수의 두 손엔

아기자기한 곰돌이 모양이 프린트된

카페 쿠폰과 그가 챙겨준 레몬 사탕 몇 개가

들려있었다.





"자주 오세요. 아참, 이 사탕 맛있더라고요. 

한번 드셔 보세요!"




사실, 카드를 받는다면 뽑아둔

 50,000원짜리라도

카운터에 놓고 나올 참이었다. 

앞으로 다신 안 올 카페니까, 

오늘 덕분에 고맙기도 했으니까 

잔돈은 팁으로 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레몬 사탕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맛, 

입 안에서 살살 굴리면 벌어진 틈 사이로

새콤한 레몬즙이 흘러나오는 그 사탕.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기에

그의 목소리는 너무 청량했다.

맑고 투명하고 활기찬 목소리에

가장 좋아하는 사탕으로 공격하다니,

반칙이었다.






사이렌에게 홀린 선원처럼

희수는 어느새 입 안에 

레몬사탕을 털어놓고 있었다.

익숙한 행복함은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일단, 오늘은 가자.

나중에 한 번 더 와서라도

오늘의 일은 꼭, 고맙다고 말하자,

결심하며 걷기 시작했다.








딸랑-




희수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가게에서 나온 수현은

앞치마를 풀어 테라스 위

의자에 두고




한참 동안 희수의 흔적을 

눈으로 좇았다. 




"성격은... 여전하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살며시 웃는 수현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봄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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