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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Sep 24. 2024

너의 삶을 글에 담아

입이 방정이다. 가끔은 이놈의 주책바가지 기질은 어디로 안 사라지나 싶다. 묵직하니 진중하고 신중하게 대해야 할 일을 때론 마음 가는 대로 지껄이다 일을 그르칠 때가 있다. 이번에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선뜻해버렸다. 신이 나서인데, 그래도 뭔가 부끄럽다.


충동적인 발언의 주인공은 ‘은수’. 때는 일주일 정도를 거슬러 올라간다. 점심시간에 잠시 나가서 커피를 마시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작년 여름부터 함께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는데 처음 시작했던 것과 다르게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아쉬운 마음에 학교 앞 커피숍에서 아주 짧은 상담을 마치고 오는 길.


녀석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싶어서 그만, 충동적인 발언을 해버리고 만다.


"쌤. 진짜 비밀인데..."

"헉! 뭔데여?"

"쌤.. 이번에 책 출판해."

"헐!! 정말요??"

"거기에 네 이야기도 나와."

"헉!!!!!!"


놀라는 모습을 보니 뭔가 나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느낌. 괜히 신나서 조금 더 스포를 하다가 5교시 시작종에 이끌려 아이를 반에 밀어 넣고 돌아 나오는 길, 아차 싶었다. 조금만 더 진중하게 말할걸. 왜 그렇게 섣부르게 말했을까.


사실, 책에 은수의 이야기가 있는 것은 맞지만 분량이 많지 않다. 은수와의 추억이 적었던 것은 절대 아니고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됐기 때문이다. 제목도 여러 번 바꿨다. 은수의 이야기만 쓸까 말까를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은수, 재인, 윤지라는 세 아이에게 보내는 글로 마무리를 지었다.


정해진 분량에 세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넣다 보니 은수에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다 적지 못했다. 원고를 보내는 그 순간까지 엄청 고민하다가 수정하지 않았다. 은수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쓰려면 책 한 권도 모자랄 것 같았으니까.


무튼, 그리하여.

새로운 연재의 시작은 단연코 '은수의 이야기'다. 은수는 여러 아이 중에 가장 마음에 깊이 남는 아이이며, 아이의 삶을 깊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 깊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아이이다. 어두움과 밝음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곁에 있을수록 많은 추억을 쌓고 싶은 아이이다.


다만, 글로서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어 아쉽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삶이기에 적절한 선을 지켜 표현해야 하므로 글 안에 '은수'라는 아이의 매력을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진심으로 아쉽다. 나와의 경험 위주로 담백하게 쓰려고 하는데 얼마나 성공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은수를, 마음을 다해 아끼므로.


이 글을 훗날 어떻게라도 볼 은수가 이즈음 읽었을 때 자신의 이야기임을 눈치채고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어 읽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 마음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조심스러운 용기로 글을 이어가 본다.






그러니까,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어 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은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22년 3월 첫날. 1학년 2반의 교실이었다. 코로나가 삶의 모든 부분을 완벽하게 잠식했던 그 계절에 우리는 처음 만났다.


나는 갑작스럽게 새로운 학교로 발령을 받아 1학년 담임을 하게 됐다. 중1. 담임. 그 모든 것이 거의 4~5년 만에 처음 맞게 된 미션이라 긴장도 많이 했고, 두렵기도 했다. 욕심껏 잘하고 싶었지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여유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모든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교실에 앉아 있으니 아이들의 얼굴은 물론 이름을 외우기도 어려운 상황. 아이들과 얼른 친해지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은 데다 아주 오랜만에 하는 담임, 심지어 2009년생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어린아이들의 담임이라니.(마지막 담임이 2003년 생이었다.)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다.


그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조금씩 내 삶에 스며들어 온 것은,

2분 단 3번째 줄에 앉아있던 8번, 은수였다.


거의 쇼트커트에 가까운 짧은 단발. 펑퍼짐한 외투, 검은 마스크, 눈을 가릴 정도로 긴 앞머리. 그리고 조용하고 무심한 듯한 얼굴. 도대체 어떤 아이일까, 궁금한 마음이 피어오르던 차에


학급 1인 1 역할을 뽑을 시간이 됐다.




사진: UnsplashLucas Marco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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