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와 가까워진 후로 알게 된 것은 은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제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꺄아아아악 거리고, 낙엽이 뒹구는 것만 보아도 깔깔거리면서 웃는다는 여중생의 모습은 여간해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은수랑 가장 친한 윤지가 워낙 반응이 큰 아이이다 보니 은수의 조용한 면이 오히려 더 도드라졌다.
처음엔 극과 극인 두 아이가 재미있어서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은수가 밟혔다. 분명 사람이라면 어떤 감정이든 간에 느낄 법도 헌데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은 분명할 텐데 표현이 없으니 마음이 쓰였다.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거나, 그 감정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녀석은 어떤 일이 생겨도 늘 “괜찮아요.”, “네.”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는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인간은 제 경험의 폭으로 삶을 대한다고 했던가. 지금은 누구보다 내 감정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었더랬다. 기질, MBTI 모든 것이 가리키는 지점에 있는 나는 태생적으로 남들 앞에서 감정 표현 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따돌림을 당할까 봐, 이상하다고 생각할까 봐, 소문이 날까 봐,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해서…
감정을 억누르는 데는 수만 가지 이유가 붙었다. 힘드냐고 물어보면 괜찮다고 답하면서 속으로 많이 곪았다. 어차피 이해해주지 못할 것이라면 애써 웃으며 연기하며 지냈다. 얼마나 나를 숨겼는지 대학시절 나의 MBTI는 ENFP였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즉흥적인 것을 사랑하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난, 그때 내 삶이 너무 버거워서 되고 싶은 나를 목표로 살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은수의 네,는 네로 들리지 않았다. 괜찮아요,는 사실 괜찮지 않아요, 로 들렸다. 은수가 말한 적은 없으나 나의 본능이 그렇게 느꼈다. 은수에겐 분명 무언가 있다, 그 무언가를 담임으로서 찾아내고 도와주고 싶다.
애석하게도 변변한 상담실 하나 없는 학교였다. 담임으로서 가볍게 아이들과 상담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교무실은 적합하지 않았다. 1반부터 6반 담임 선생님들이 포진해 있는 곳에서 아이들은 여간해선 속 이야기를 터놓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에 교무실에서 아이와 상담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찾고 찾아도 갈 곳이 없어 결국 선택한 것은
필담이었다.
* 필담: 말이 통하지 아니하거나 말을 할 수 없을 때에, 글로 써서 서로 묻고 대답함.
아침 조회 시간, 점심시간, 쉬는 시간 틈틈이 교실로 찾아가 애들 컨디션을 살피다가 은수가 평소와 다르게 보이면 방과 후에 은수를 남겨 놓고선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가 진지한 내용이 나올라치면 나는 목소리를 조금씩 줄이곤
종이 한 장, 연필 두 자루를 꺼내와 쓰윽쓰윽- 글을 적어내려 갔다.
교무실에 선생님들이 업무 보는 데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편하게 이야기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 민감한 내용이 적히더라도 함께 파쇄하면 영원히 사라지는 그 필담은 은수와 나의 유일한 소통 방법이었다.
- 무슨 일 있어?
- …. 아뇨?
- 에이. 어제랑 표정이 다르구먼.
- …..
- 하고 싶은 말 있음 편하게 해! 아무도 못 들음!
- ….. 선생님 사실은…
- 응응
- 사실은 요새 자꾸….. 마음이 이상해요….
한 번 트인 글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은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아서 녀석의 글이 주춤하더라도 끝까지 기다려주었다. 그러면 은수는 조금씩 천천히 제 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