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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우 Feb 21. 2020

인간관계를 위한 빨간약(16)

[QnA 2부]

두 번째 명제에 대한 반론을 정리하고 답변해 보도겠습니다. 이번 명제의 분석과 전략은 질문이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셋만 꼽아서 설명하겠습니다.


1. 내면적 매력은 성적‧사회적 가치보다 얻기 쉬울까?


긍정성, 유머, 경청이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건 모두 동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자질을 가지려면 노력이 필요한데, 과연 그 노력이 쉬운가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다수의 자기계발서는 이런 자질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말투를 바꾸고, 좀 더 부드러운 언어로 대화를 하면 관계가 나아진다는 거죠. 이건 현재 내가 지니고 있지 않은 긍정성을 언어에 녹여내라는 조언입니다.

그러나 저는 심리적 영향력에 핵심이 되는 내면적인 가치들이 외면적인 가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것만큼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질문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매력적이고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걸 알면서도 왜 그걸 쉽게 따라 하지 못할까요?


연이어 질문을 한다면 긍정적이면서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만약 방법을 알고 계신다면 왜 우린 실천하지 못하는 걸까요. 계속 질문을 더 하겠습니다. 이런 자질을 지니기 위해서 개인이 해야 하는 노력의 양은 같을까요. 진실로 노력했는데도 얻을 수 없는 경우는 없을까요?


여러 번의 질문을 통해 사견을 피력해 봅니다. 개인의 자질은 쉽게 고쳐지지 않고, 언어 습관이나 칭찬을 잘하는 등의 태도도 쉬이 교정되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언어와 정신적인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시중 서적에서 말하는 것처럼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인간관계는 위계와 이익이 먼저 작용하는 영역이므로 심리적인 영향력이나 내면적인 매력은 부차적으로 작동합니다. 만약, 우리 성격에 결함이 있다면 이걸 해결하고 제거하는 건 분명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결함을 지닌 정도가 아니라면 정신적인 부분을 가다듬는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힘을 얻거나, 자신의 가치를 올리는 데 에너지를 쏟는 게 낫습니다. 어차피 둘 다 얻기 힘든 자질이니까요.


2. 물고기를 위한 만트라.


긍정적 물리력의 전략을 다루면서 자주 받은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상대가 나에게 필요한 것만 얻고 가버리는 현상은 어떻게 해야 하죠?’ 어장관리라고 해도 좋고 재능 먹튀라고 불러도 괜찮겠습니다. 상대와의 관계 자체는 진전되지 않고 실제로는 착취당하는 관계가 이뤄지는 데 과연 그게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고 싶었던 거겠죠.


하지만 이미 질문 자체에 답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긍정적 물리력이 없었다면 그와는 관계조차 맺어지지 않습니다. 어장관리가 아니라 관계라는 물에 통발조차 놓이지 않을 테니, 어부와 물고기는 서로 바라보되 만날 수도 없었겠죠. 결국 어장관리와 호구는 자발적으로 형성됩니다. 그래서 누가 어장 관리당했다거나 상대가 내게 필요한 것만 취하고 버렸다고 비난하면 저는 말을 아낍니다. 어차피 그도 알고 있습니다. 속은 게 아니라 속고 싶었음을요.


그러나 드물게도, 진실로 속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저는 엄중히 물어봅니다. 진실로 그러했다면 애초부터 거래하는 게 맞았다고요. 사실 이 물고기를 위한 만트라에는 아픈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긍정적 물리력으로 관계가 형성됐는데도,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비치지 않았다는 건 지세의 유리함을 두고도 패배한 전투와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긍정적 물리력이 없었으면 우리는 계속 다른 위계에 살았을 겁니다.


그래서 상대에게 속거나 이용당하고 싶지 않은 분들은 처음부터 돈을 요구하거나 상응하는 대가를 표명하셔야 합니다. 내가 베푸는 것이 공짜가 아님을, 불확실한 기대에 근거하고 있지 않음을 언표하셔야 하는 겁니다. 다수의 사람이 부탁을 받고 돈을 달라고 하는 걸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이건 상당히 중요합니다. 만약 상대에게 경제적 보상을 바랄 만큼의 일을 무료로 베푼다는 건 내가 베푼 서비스가 어중간한 가치밖에 지니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꼴이거든요. 그러니 무형적인 기대, 요컨대 나중에 갚을 것이라던가, 고마워할 것이라던가, 내게 호감을 느낄 것이라는......그런 근거 없는 믿음으로 호의를 베푸시는 거라면 저는 말리고 싶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내 가치를 올리거나 휴식을 취하는 게 낫습니다. 내게 유형적인 서비스를 바라면서, 거기에 돈이나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겠다는 게 비합리적임을 먼저 깨달으셔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 긴 만트라에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습니다. 원망하지 맙시다. 타인이 나를 착취했다거나 이용했다고 비난하지 맙시다. 인간이 주체적이라면 착취당함을 선택할 수 있을 뿐 착취당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일방적인 착취를 당했고 아무런 이익도 없는 관계를 유지했다면 그건 자의로 인간이 지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인(聖人)조차도 그럴 수가 없습니다. 때로 우리는 나를 낳고 길러준 부모에게도 왜 돈을 제때 갚지 않냐고 소리 지를 낼 수 있습니다. 차라리 그게 더 인간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진실로 착취당했다고 여긴다면 그건 나의 아둔함을 인정하는 서글픈 고백에 불과합니다.


3. 리더는 정말 외로울까?


사람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리더는 외로운 자리라는 말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실제로 프로젝트를 이끄는 팀장이 되어보면 타인보다 많은 책무와 고생을 알아 줄 이가 없어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작은 점포의 사장님만 돼도 아르바이트생에게 털어놓지 못 할 말과 소외감이 발생하죠. 그래서 리더는 외롭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리더는 외로울까요?


구조적으로 분석해본다면 아닙니다. 리더가 외로운 건 자리의 문제가 아니라 수효의 부족 때문입니다. 평소 카페에서 일하는 사장은 점원보다 소외감을 더 느낄 겁니다. 아르바이트생끼리는 친한 데 괜히 사장님과는 거리감을 느끼니까요. 하지만 이것도 카페 나름입니다. 가령 사장님 혼자 점포를 운영하는 1인 카페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반년 정도 그럭저럭 꾸려가다 보니 어느 정도 손님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주말에만 일할 아르바이트생 영희를 고용해 둘이서 일하게 됐습니다.


이제 고용인과 피고용인이 생겼습니다.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가 형성된 겁니다. 사장님 성격에만 문제가 없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친밀하고 돈독할 겁니다. 때로는 사장님이 오는 게 더 반가울 수도 있겠죠. 예를 들어 주말 오전에 홀로 일하는 영희는 내심 사장님이 오는 오후 시간을 기다릴 수도 있는 거죠. 그렇다면 이 카페에서만큼은 리더는 외롭지 않다고 봐야 합니다. 둘밖에 없어서 아직 실감이 나지 않지만 리더와 팔로워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이후 카페는 성장을 거듭합니다. 나중에는 평일 아르바이트생까지 뽑아 총 10명의 아르바이트를 거느리는 대형 카페가 됐습니다. 인력을 홀로 관리할 수 없었던 사장님은 영희를 매니저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장님은 카페에 오면 왠지 아르바이트생과 묘한 거리감을 느낍니다.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끼리는 친한 것 같은데 자기가 오면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것 같거든요. 이제야 사장님은 리더는 외로운 자리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카페에 사장님이 한 분이고, 점원은 여럿이니 당연히 외롭죠.”


사장님은 이제 카페를 프랜차이즈로 키우고 싶어 개인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이 모인 세미나에 참석합니다. 어쩌다 보니 점포 관리를 하는 영희도 따라왔습니다. 사장님은 자기와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여러 카페 점주를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아르바이트생 관리가 힘들다고 말하니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네요. 한창 수다를 떨고 있을 무렵 영희는 조용히 세미나실을 나와 홀로 생각에 잠깁니다.


“나는 리더가 아닌데 지금 왜 외로운 거지?”


리더는 외롭지 않습니다. 같은 지위를 공유하는 사람이 같은 공간 내에 적음으로써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어떤 분은 반론할 수 있겠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리더가 되면 외로워지는 건 사실이지 않으냐고 말이죠. 저는 이 말에도 동의하기 힘듭니다. 아르바이트생이 사장님과 잘 지내고픈 마음이 없을까요? 카페라는 공간 내에서 사장님은 부정적‧긍정적 물리력과 심리적 영향까지 행사할 수 있는 존재인데요. 그렇다면 왜 아르바이트생은 사장님과 묘하게 거리를 두고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잘 지낼까요. 그건 서로 추구하는 이익이 배치돼서입니다. 


사장님의 이익은 점포가 바빠지는 거고, 카페 점원의 이익은 장사가 망하지 않을 정도로만 되는 겁니다. 둘의 이익이 다르니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만약 아르바이트생 중 카페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아가 자신이 일하는 점포의 매출 신장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는 아르바이트생보다 사장님과 더 친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사장님이 자신의 이익인 ‘점포가 바빠지고 매출을 높인다’를 버리고 ‘적당히 운영하면서 분위기 좋은 카페를 만든다’를 목표로 재설정한다면 아르바이트생과의 관계는 급격히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론만 말하겠습니다. 리더는 거의 모든 면에서 관계에서 유리합니다. 다만, 이 관계에서의 유리함을 선택하기 위해 현실적 이익을 버릴 준비가 돼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제약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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