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결심 다섯 달, 돌아보며.
2020년 9월 25일은 아마 나의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찾아온 날일 것이다. 채식을 시작한 날이었다. 사실 결심의 순간이 찾아오기 이전 몇 주 동안 채식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기 시작하였다.
9월 24일 밤, ‘내일부터는 채식을 시작해야겠다.’라는 결심을 품에 안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그렇게, 살아가며 결코 멈출 수 없을 무엇인가가 나의 삶에서 새로이 시작되었다.
2020년 9월 26일, 나는 나의 채식 생활을 기록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계정에 식단과 채식 준수 여부를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채식주의자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동물권, 생명 윤리, 건강, 환경 보호 등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필자가 채식을 시작한 이유는, 사진 속 글에 보이는 대로 오로지 '지구 환경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사실 환경보다는 사피엔스가 걱정되었다. 그리고 사실 사피엔스보다는, ‘내가 늙어 죽을 수 없을 것’이 걱정되었다. 이기적인 이유로 시작된 이타주의인 것이다.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보통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를 시청한다. 어느 날 우연히 데이비드 에튼버러의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나게 되었다.
본 다큐멘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원래의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자연이 어떻게 망가졌는지.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망가뜨렸는지. 망가진 자연은 어떻게 다시 인간을 공격할 것인지. 지구 온난화를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은 언제가 될 것인지.
그리고 ‘공장식 축산’이 어떻게 여기에 이바지하고 있는지.
적절히 맞물려 환경 관련 서적도 읽기 시작했다. 그중 나에게 가장 큰 깨우침을 준 도서는 애니 레너드 작가의 『물건 이야기』였다. 해당 텍스트를 읽은 이래로, 일상 속 작지만 큰 태도의 변화가 생기기도 하였다. 이제 나는 텀블러 없이는 카페에 가지 않고, 에코백이나 쇼핑백 없이는 장을 보러 가지 않는다.
이후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와 텍스트에 더욱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산호초를 따라서”, “플라스틱, 바다를 삼키다”, “우리의 지구(시리즈)”, “미션 블루” 등의 다큐멘터리를 시청했고, 다양한 환경 관련 기사를 스크랩하였다.
더는 늦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때는 2020년 9월 25일이었고, 그렇게 나는 채식을 결심하였다.
본 오피니언은 비건을 주제로 한 신지이 에디터의 글 “[Opinion] 비건 친화적 자세를 취하는 것 [사람]”에서 영감을 받았다. 신지이 에디터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위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채식은 흑백논리가 아니다. 채식은 스펙트럼이다.
필자가 채식을 결심하였을 때, ‘비건(Vegan)’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니었다. ‘페스코 채식(Pesco Vegetarian)’을 지향하는 ‘플렉시터리안(Flexitarian)’이 되기로 한 것이었다. 혼자 혹은 친한 사람과 밥을 먹을 때는 채식을 실천했지만, 단체 모임이 있을 때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다. ‘유난 떠는 사람’으로 보일까 무서웠다.
그래도 사람들과 만날 때 ‘고기를 안 먹는다’라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걱정과는 달리 주변에서 받은 것은 감사하게도 따뜻한 배려였다. “우유는 괜찮아?”, “계란은?”, “해산물은 먹어?”와 같은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점차 자신감이 붙기도 했고, 안 먹다 버릇 하다보니 오히려 고기를 먹는 것이 어색해졌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만나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었을 때, 확실히 속이 많이 안 좋아진 것을 느꼈다. 그때부터, 경우에 따라 육류 및 가금류를 섭취하는 페스코 플렉시터리안에서 어느 때에도 육류 및 가금류는 섭취하지 않는 페스코 채식주의자로 전향하였다.
앞서 언급하였듯, 나의 채식 결심 사유는 건강도, 동물 윤리도 아닌 오로지 ‘환경’이었다. 하지만 채식 계정을 운영하며 많은 채식주의자와 소통하게 되었다. 나와 같이 환경을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동물권’을 위하여 채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여러 차례 듣게 되었다.
그들은 ‘종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동물해방’을 외쳤다. 설득력 있는 그들의 논거에 점차 눈길이 가기 시작하였고, 책을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을 읽기 시작하였고, 나의 채식 사유에는 ‘동물권’이 추가되었다.
여전히 페스코 채식주의자이지만 이제는 패류를 제외한 해산물도 웬만하면 먹지 않는다. 나의 '페스코 채식 계정'에도 어류 사진을 업로드하진 않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비건이 될 것을 꿈꾼다.
건강을 이유로 채식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건강에 있어서도 득을 보고 있다. 원래 나는 극심한 만성 위염이 있었다. 무엇을 먹든 속이 쓰렸기에, 말 그대로 “위통약은 내 생활 필수품”이었다. 그러나 비건지향 페스코 채식생활을 시작한 이후, 속 쓰림을 느껴본 적이 없다. 심지어 술을 꽤나 많이 마신 다음 날에도 속 쓰림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고양이를 제외하자면,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채식주의자는 동물애호가가 아니다. 물론 채식 인구 중 동물 애호가의 비율이 높긴 하겠지만 말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서워’한다. 사실 나는 강아지도 무서워한다. 그렇다. 나는 ‘겁쟁이’이다.
그럼에도 비인간 동물의 고통이 걱정되어 채식을 한다. 피터 싱어가 『동물해방』 1975년판 서문에서 하나의 에피소드와 함께 정리한 것에 크게 공감하였다.
싱어는 그가 동물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동물 애호가’ 두 명으로부터 식사에 초대받았다고 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키우는 ‘개와 고양이’에 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동물 사랑’을 자랑하는 동시에, 돼지고기 햄이 들어있는 샌드위치를 먹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싱어의 생각은,
“우리는 동물들을 ‘애호’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동물들이 쾌고 감수 능력이 있는 독립된 존재로 처우받기를 원했으며, 그들이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 – 마치 지금 여주인이 만든 샌드위치의 재료로 들어가 있는 돼지처럼 – 으로 처우받길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 피터 싱어, 김성한 역, 『동물해방』, 연암서가, 2012, 16p
라는 설명으로 정리된다. 싱어의 말마따나, “동물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애호해야 한다”고 가정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사실은 조금의 역겨움도 느끼곤 한다. 자신을 ‘동물애호가’라고 소개하며, 길고양이 학대 사건에 분개하고 강아지를 유기하는 데에 분노하는 게시글이 업로드되어있는 인스타그램 피드에, ‘소불고기 피자’와 '후라이드 치킨' 사진이 공존하는 것을 볼 때면 말이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것이 우려되어 언급한다. 결코 고양이나 강아지 학대가 방임되어도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사건들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고기가 되기 위해 태어난’ 동물들에게는 그것이 ‘일상’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나는 동물 애호가가 아니다. 그러나 동물을 걱정하고, 비건을 지향한다. 당신도 연결되었는가?
▼아트인사이트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2377